싸리란 이름의 나무가 있다. 도시에만 살면 생소할 수 있지만 시골 사람들에겐 매우 친숙한 나무다. 광주리, 회초리, 빗자루를 만들 때 쓰는 나무이기 때문. 그런데 이 싸리의 순을 나물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식재료로도 약재, 도구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활용되는 싸리나무와 그 순이 품은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싸리, 어디서 어떻게 자라는가
싸리는 콩과에 속하는 낙엽활엽 관목이다. 높이는 2~3m 정도로 자란다. 드물게 4m까지 커지기도 한다. 가지가 옆으로 덥수룩하게 뻗으며, 잎은 3출엽으로 타원형 또는 달걀 모양이다. 잎 끝에는 짧은 침상 돌기가 있다. 7~8월이면 홍자색 꽃이 피고, 10월에는 협과 열매가 익는다. 한국 전역의 산야, 특히 햇볕이 잘 드는 언덕이나 들판에서 흔히 자란다. 일본, 대만, 중국 등 동아시아에서도 널리 분포한다.
싸리는 종류가 다양하다. 싸리, 조록싸리, 참싸리, 불싸리, 괭이싸리, 꽃참싸리 등 20여 종이 한국에 자생한다. 이들 중 가장 흔한 것은 싸리와 조록싸리다. 싸리 잎은 예쁜 타원형이고, 조록싸리 잎은 끝이 좁아지는 삼각형 모양이다. 이 나무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며, 뿌리가 질소를 고정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다. 그래서 농가 근처나 산기슭에서 쉽게 눈에 띈다.
제철은 봄, 특히 4~5월이다. 이때 어린 순이 가장 부드럽고 맛이 좋다. 연한 잎과 줄기를 채취해 나물로 요리한다. 여름이 되면 잎이 질겨져 식용으로 적합하지 않다.
이름의 유래와 다른 이름들
싸리의 이름은 그 생김새와 쓰임에서 비롯됐다. 싸리는 고대 한국어에서 가늘고 긴 가지를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이 나무의 가느다란 가지가 빗자루나 울타리를 만들 때 유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싸리나무는 엮거나 묶는 데 적합한 탄성을 지녔다. 이런 특성이 이름에 반영됐을 가능성이 크다.
싸리나무는 지역과 용도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광대싸리, 쉽사리, 왕좀싸리, 진도싸리, 지리산싸리 등이 있다. 특히 광대싸리가 나물로 먹을 때 맛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싸리나무는 화투패에도 있다. ‘홍싸리’로 등장한다. 7월 패에 그려진 붉은 꽃이 바로 싸리다.
맛과 요리, 그리고 효능
싸리순 나물은 부드럽고 은은한 맛이 특징이다. 씹을수록 고소한 풍미가 퍼진다. 약간의 떫은맛이 있지만 데치면 사라진다. 식감은 부드럽다.
요리는 간단하다. 어린 순을 채취해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데친 순은 찬물에 헹궈 물기를 짠다. 이후 간장, 참기름, 다진 마늘, 고춧가루로 무친다. 볶음으로 먹어도 좋다. 기름에 볶으면 고소한 맛이 더 살아난다. 지역에 따라 멸치나 고추장 양념을 더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잎이나 줄기 껍질을 가루 내 밀가루와 섞어 국수를 만든다. 씨앗은 갈아 죽이나 밥에 섞어 먹는다. 씨앗에는 단백질, 전분, 지방질이 풍부하다.
싸리나무는 식용뿐 아니라 약재로도 쓰인다. 잎, 뿌리, 씨앗 모두 약용 가치가 있다. 뿌리와 줄기는 달여 마신다. 생리불순, 타박상, 관절염, 염증 완화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혈액 순환을 돕고 간 기능을 개선한다. 숙취 해소에도 좋다. 씨앗은 뼈를 튼튼히 하고 기운을 북돋는다. 옛이야기에는 싸리씨를 먹어 백 살 넘게 산 이들이 등장한다. 꽃은 피부를 맑게 하고 주근깨나 기미를 줄인다. 결막염이나 눈 충혈에도 효과적이다.
싸리나무는 생활 도구로도 각광받았다. 가느다란 가지는 빗자루, 소쿠리, 채반, 광주리, 삼태기를 만드는 데 쓰였다. 울타리나 사립문 재료로도 인기였다. 특히 탄성이 좋아 회초리로 애용됐다. 과거 서당이나 가정에서 싸리나무 회초리는 종아리를 때리는 데 최적이었다. 그 단단함과 유연함은 회초리의 대명사로 기억된다. 불에 잘 타고 연기가 적어 횃불이나 땔감으로도 사용됐다. 심지어 이태조의 화살대로 쓰일 만큼 귀한 재료였다.
싸리나무의 문화와 이야기
싸리나무는 한국 문화 깊숙이 뿌리내렸다. ‘싸리 밭에 개 팔자’라는 속담이 있다. 무더운 여름, 서늘한 싸리밭에 누운 개를 비유한 말이다. 편안한 삶을 상징한다. 화투에서 홍싸리는 7월의 상징이다.
싸리나무는 문학에도 등장한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는 공비들이 싸리나무로 불을 피우는 장면이 나온다. 나무 속 습기가 적고 화력이 강해 비 오는 날에도 잘 탄다. 이런 특성 덕에 북한군 군장에서 땔감으로 포함됐다는 기록도 있다.
꿀벌도 싸리나무를 사랑한다. 꽃이 피면 수백 마리의 꿀벌이 몰려든다. 싸리꿀은 아카시아 꿀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독특한 향으로 미식가들 사이에서 주목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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