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웅 칼럼]국민소득 4만달러는 '원화의 국제화'에서 해법 찾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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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칼럼]국민소득 4만달러는 '원화의 국제화'에서 해법 찾을 수도

비즈니스플러스 2025-05-02 08:58:44 신고

3줄요약
이용웅 주필
이용웅 주필

#장면1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5년에 있었던 일이다. 이른바 'BOK(한국은행의 영문 약자) 발 쇼크'가 전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 곳곳에서 미국 달러화 투매가 일어났다. 

한국은행은 2005년 2월 18일 국회에 제출한 업무보고 자료에서 외환보유액의 운용과 관련해 "투자대상 통화의 다변화"라는 문구를 넣었다. 한국은행은 이를 위해 호주달러, 캐나다달러 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 달러 자산을 줄이고 비정부 채권을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미국은 만성적인 경상적자를 메우기 위해 막대한 해외자본을 끌어들여야 했는데 엄청난 외환보유고를 쌓아놓고 있는 한국은행이 미국 달러를 내다 팔 수도 있다는 판단이 확산되면서 미국 달러화는 유로화, 엔화 등에 비해 추풍낙엽 신세가 되고 원화값 역시 초강세를 보여 1000원대가 무너져 외환위기 이전의 3자릿수 환율을 맞이하게 되었다.

미국 증시도 21개월만의 최대 낙폭을 기록하면서 급락세를 연출했다.  

결국 한국은행은 달러를 매각할 의사가 없다고 밝힌 뒤에야 세계 금융시장이 진정되었다. 

그런데 다시 5월이 되자 이번에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박승 당시 한국은행 총재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한은이 외환시장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하자 다시 한 번 달러화는 급락세를 면치 못했다. 한은의 외환시장 불개입이 달러화의 가치 추락을 용인하는 듯한 발언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2005년 한국은 일본, 중국, 대만 등에 이어 4번째로 많은 2000억달러의 외환보유고를 갖고 있었으며 이 중 90% 이상이 달러 자산으로 묶여 있었다. 

#장면2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태국 환전소에서 원화의 환전을 거절하는 일이 벌어져 국내외의 관심을 모았다. 

당시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태국 (일부) 환전소에서 한국 돈 거부당함"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태국 여행 중이라고 주장한 A씨는 환전소를 찾았다가 원화 환전을 중단한다는 공지문을 발견했는데 "한국 내 정치적 문제로 인해 일시적으로 원화를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비상계엄이 타국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라고 생각한다"며 "단순한 해프닝이나 논란 정도로 덮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물론 이 문제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비상계엄이라는 말 그대로 비상 상황이 한국경제는 물론 한국 원화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실제 외환시장에서 원화는 비상계엄 이후 1400원대를 가볍게 돌파하고 1500원 선까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쨌든 한국 원화는 20년 전 2005년에는 연 평균환율이 1024원이었는데 이제는 1400원대 환율이 일상화되는 처지에 놓였다. 무려 30~40%나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원달러 환율 추이(달러당 원) / 자료=한국은행
원달러 환율 추이(달러당 원) / 자료=한국은행

◇국민소득 3만달러 박스권에 갇힌 한국경제의 활로를 찾아야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지난해보다 4.1% 감소한 3만4642달러로 추정했다. 저조한 경제성장률도 문제이지만 원화값이 워낙 추락일색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10년 넘게 3만달러 박스권에 갇혀 있었는데 2029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4만341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IMF는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4만달러 돌파시점을 2027년으로 예상했지만, 6개월 만에 발표한 수정 전망에서 2029년으로 2년을 늦췄다는 점에 우리 언론들은 주목했다. 

20년 전만 해도 세자릿수를 위협할 만큼 강세를 보이던 원화값이 충격을 받은 것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였다. 2007년 929원까지 떨어지던 환율은 리먼브라더스 사태를 겪으면서 2009년에는 1276원까지 급등했다. 이후 다소 안정세를 취하면서 2020년 1180원까지 내려가던 환율은 2022년 우크라이 전쟁과 레고랜드 사태 등 나라 안팎의 약재가 겹치자 연평균환율이 1292원까지 급등했다. 이후 미국이 코로나 시국에 뿌려진 유동성을 흡수하면서 금리인상기에 들어가고 한국경제는 저성장 기조에 본격 진입하자 한국 원화는 말 그대로 추충낙엽 신세가 된데다 계엄이라는 엄중한 상황이 겹쳐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는 저성장 구조가 이미 고착화되고 원화값 역시 도무지 회복될 기미가 없어 국민소득이 4만달러 선 앞에서 거듭 좌절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만약 우리나라 환율이 20년 전인 1000원대를 그대로 유지했다면 지금쯤 국민소득은 4만7000달러 수준으로 5만달러를 넘보는 수준일 것이다. 

물론 원화값이 실력 이상으로 고평가되면 그것도 문제이지만 지나치게 저평가되면 원화 구매력이 떨어져 물가 전반에 악영향을 주고 실질소득이 감소되는 효과를 피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막대한 규모의 외화 부채에 대한 부담 역시 눈덩이처럼 늘어나기 마련이다.  

도대체 지난 20년간 한국경제는 어떤 과정을 거쳐왔던 것인가. 

물론 우리 경제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을 반복하고 있음을 탓해야 하지만 원화값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기형적인 금융구조도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픽=연합뉴스
그래픽=연합뉴스

◇원화의 국제결제 비중 늘리고 원화기반 스테이블 코인 개발에도 관심을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해 결제 통화별 수입 비중을 보면 미국 달러화 비중은 80.3%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고 이어 유로화(5.7%), 엔화(3.7%), 원화(6.3%), 위안화(3.1%) 순이었다. 

2023년과 비교해 위안화 결제비중이 전년대비 0.7%포인트 상승한 반면 원화, 미국 달러화는 각각 0.3%포인트, 0.2%포인트 하락했다. 

김성준 한은 경제통계1국 국제수지팀장은 위안화 비중이 6년 연속 증가한 것과 관련해 "중국과의 교역이 늘고, 중국 정부의 위안화 국제화 노력과 2014년 원·위안 직거래 시장이 생긴 영향 등이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달러패권에 도전하는 위안화가 한국 무역 시스템에서도 약진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반면에 한국 원화 결제 비중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음도 다시 한 번 확인된다. 원화의 국제화가 그만큼 더디게 진행되고 있음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수년간 지속되는 상황에서 러시아 루블화가 가치를 지키고 있거나 오히려 오르고 있는 것은 루블화의 국제결제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원화의 국제화'란 원화의 사용 범위를 해외시장으로 확대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해외에서 비거주자간의 원화거래가 가능하고 원화표시 금융자산을 해외에서 발행하거나 우리나라가 수출⋅수입하는 상품 및 서비스 거래의 결제시 원화사용 비중을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화 국제화의 장점은 원화의 사용영역을 해외로 확대하여 달러화 의존도를 줄임으로써 해외에서 발생하는 경제충격이 국내경제에 미치는 영향 역시 줄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위기나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국제적인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나라 원화는 가장 먼저 벼랑 끝으로 달려가 수직낙하하곤 했다. 원화가 그 어느 나라 통화보다 큰 충격을 받으면서 환율이 급등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음을 우리는 이미 수차례 경험했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원화 국제화의 효용 및 리스크에 대한 재고찰과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준기축통화 이외에도 많은 국가의 통화들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자유로이 교환되는 교환가능성 통화(convertible currency) 또는 부분 국제통화로서 거래되고 있다"면서 호주 달러화, 싱가포르 달러화, 캐나다 달러화, 홍콩 달러화 등을 예로 들었다. 

이들 통화들은 결제통화나 외환보유액을 구성하는 지급준비금(reserve currency)으로서의 기능은 미흡하나 뉴욕, 런던 등 글로벌 금융중심지에서 다른 나라 통화와 은행간 외환매매가 일어나고 자국통화표시 금융상품이 활발히 거래되면서 가치저장 수단으로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러한 부분 국제통화에는 우리나라보다 경제 및 금융의 발전 정도가 크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는 중국 위안화, 태국 바트화, 러시아 루블화, 멕시코 페소화 등 많은 신흥국 통화들도 다수 포함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원화의 국제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 변수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바로 스테이블 코인이다. 

사단법인 오픈블록체인·DID협회는 최근 KB국민·신한·우리·NH농협·IBK기업·Sh수협과 금융결제원이 참여하는 스테이블코인 분과를 신설하고 조만간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컨소시엄을 구성하키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화를 은행이나 신탁회사에 예치하면 해당 금액만큼 1대 1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주는 방식이다. 

요즘은 테더(USDT)와 같은 달러 베이스의 스테이블 코인과 유사하게 원화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같은 뉴스에 비상한 관심을 주었다. 원화기반 스테이블 코인은 원화의 국제화와 가치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원화의 국제화가 이뤄지면 원·달러 환율은 국제적인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급변동하는 위험자산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20년 만에 돈(원화)의 가치가 40%나 급락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고 당연히 국민소득도 3만달러 박스권에서 벗어나게 된다.   

게다가 최근에는 달러 베이스 스테이블코인 거래가 급증하면서 원화를 찾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때문에 원화가치가 더욱 급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내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국내 거래소 USDT 월 거래액은 8조5148억원이었지만 계엄령으로 원·달러 환율이 치솟자 지난해 12월에는 국내 거래소 USDT 월 거래액이 3배나 폭증한 28조7715억원에 달했다. 

가상업계 관계자는 말하기를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통화 주권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달러 스테이블코인 지배력이 강화할수록 원화 통제력의 약화가 불가피한 만큼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다. 

브라질 중앙은행 가브리엘 갈리폴로 총재는 올해 초 "브라질 내 전체 암호화폐 거래의 90%가 스테이블코인과 관련 있다"면서 브라질 통화주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한바 있다. 

물론 달러베이스 스테이블 코인 역시 트럼프 경제정책이 실패로 끝나면 시장에서 버림받게 되는 미국 국채와 마찬가지 신세가 될수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상황에서는 원화연계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질 수도 있다. 

아무튼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 발행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원화의 국제화'를 앞당기는 것이 산업경쟁력 강화만큼이나 중요하다.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은 수출만 독려해서는 어려운 일이고 국제 금융시장에서 원화값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야만 가능한 것은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용웅 주필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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