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산 자동차 부품에 대한 고율 관세 적용을 일부 유예하는 조치를 내놨지만, 국내 부품업계는 마냥 안도할 수 없는 분위기다. 일시적으로 숨통이 트일 수는 있지만, 2년 뒤 다시 관세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고, 이번 유예 조치의 적용 범위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9일(현지시간) ‘수입 물품에 대한 특정 관세 해소’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외국산 자동차 및 부품에 대한 25% 고율 관세 적용을 일부 완화하는 내용의 포고문을 발표했다. 미국 내에서 최종 조립된 차량에 한해, 외국산 부품 일부에 대해 관세를 감면해주는 방식이다.
구체적으로는, 자동차 권장소비자가격(MSRP)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부품에 대해 2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감면이 이뤄진다. 첫해에는 MSRP의 3.75%까지, 둘째 해에는 2.5%까지 관세가 면제된다. 미국 정부는 부품 가격을 직접 따지기보다는 차량 전체 가치 중 일정 부분을 외국산 부품으로 간주해 감면액을 일괄적으로 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번 조치에는 기존 철강·알루미늄 등에 적용돼 온 별도 관세와의 중복 부과를 방지하고, 이미 납부된 중복 관세는 소급 적용돼 환급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백악관은 이번 조치가 미국 자동차업계의 공급망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미국 내 조립공장을 운영 중인 현대차와 기아 등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일정 부분 수혜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정작 국내 자동차 산업 생태계의 뿌리를 이루는 부품업계의 표정은 어둡다. 관세 감면 대상이 ‘미국에서 조립된 차량’에 한정되고, 부품 제조사에는 직접적인 혜택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부품업체는 중소기업 비중이 높은 데다, 미국에 독자적인 생산거점을 확보한 기업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은 완성차나 대형 1차 협력사에 납품하는 구조로, 이번 조치의 효과가 체감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공급망의 하위 단계로 갈수록 이 같은 문제는 더 심화된다. 2차, 3차 협력업체일수록 가격 결정권이 낮고 관세 부담 전가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완성차 업체들은 당분간 한숨을 돌릴 수 있겠지만, 중소 부품사들은 여전히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는 구조라는 게 업계의 현실적인 평가다.
또 하나의 뚜렷한 제약은 중국산 부품은 관세 유예 대상에서 아예 제외됐다는 점이다. 한국이 수입하는 자동차 부품의 약 40%는 중국산이며, 중소 협력업체일수록 납기 대응과 단가 경쟁력을 이유로 중국산 부품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기업은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와 무관하게 관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더 큰 우려는 이번 조치가 ‘2년 한시적’이라는 데 있다. 유예 종료 시점인 2027년 5월 이후에는 다시 25% 고율 관세가 전면 부과될 가능성이 높다. 산업계에선 유예는 유예일 뿐, 실질적으로는 미국에 공장을 세우라는 통상적 신호라는 반응도 나온다.
한 부품업계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형식적으로는 완화지만, 실제론 2년 내에 미국에 공장을 세우라는 신호로 느껴진다”며 “대부분의 중소 부품사는 자금이나 인력 모두에서 여유가 없어 사실상 대응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이번 조치를 단순한 세제 혜택이 아닌,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본격화하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이번 포고문은 단기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기보다, 장기적으로는 미국 내 자동차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방향성을 담고 있다”며 “결국에는 현지 생산 능력과 유연성을 갖춘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대기업은 그나마 대응 여력이 있지만, 중소 부품사들은 설비와 투자 여건에서 절대적인 제약이 있다”며 “이러한 흐름이 본격화되면, 대응 역량에 따라 산업 내 양극화가 심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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