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구씨 작가] 아침형 인간인 나는 야간작업을 잘하지 않는 편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경험해 본 바로 야작을 통해 오히려 내 작업을 내가 망치거나 실수로 부숴버리는 사건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항상 ‘밤’은 잠에게 양보했다. 하지만 최근 일정들이 조여 오면서 밤에도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하루가 48시간이라면 얼마나 좋을’ 같은 헛소리 생각을 하며 밤에는 또 다른 작업실로 향했다.
야간에도 하는 작업의 시간은 이제 말 그대로 밤이기도 하고 말 그대로 어둠이기도 하다. 작업에 야광안료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처음으로 한 일은 작업실을 암막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자연광은 조금의 면적으로도 공간을 환하게 만든다. 창문의 빛을 막는 일은 벽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천으로 막는 것은 어려웠고, 다이소 암막 시트 10개쯤을 구매하고 나서야 나의 암막 만들기는 마무리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암막을 만드는 게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누덕누덕한 시트지가 밝은 형광등 앞에서 눈에 거슬리지만, 문 앞에 놓인 작은 스위치를 눌러 불을 끄면 작게 새어나오는 빛들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마주한 작업실에서도 남들과는 시차 있는 어둠을 맛볼 수 있다. 작업실이 암막이 되어서인지 밤의 작업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게 된 것만 같다. 나는 어둠에 익숙해진 것일까.
불을 환하게 켜고 작업하다 그 과정을 보기 위해 형광등을 끄고 작업실을 둘러본다. 예상대로 작업도 빛이 나지만 작업실 곳곳에 흩뿌려진 작업의 흔적들에서도 빛이 새어 나온다. 쓰다 남은 안료들, 아직 사용되지 않은 안료들, 책 아래의 시트지가 빛난다. 내가 작업하는 동안 흡수된 빛들이 어둠 속에서 다시 방출되며 색이 아닌 빛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내가 작업실에서 활동했다는 것을 이들만이 아는 것 같다. 눈을 뜨고 길쭉한 접이식 간이침대를 피하고 아슬아슬하게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레진을 섞고 작업을 했다는 것을 내 작업만이 알고 있는 것 같다. 물티슈에 묻은 레진, 플라스틱 컵의 가장 아래 틈에서 미처 나오지 못한 레진, 주사기의 마지막으로 남은 레진들이 빛난다. 작업을 살펴보기 위해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종종 ‘저게 뭐지’라는 생각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그것들을 다시 살펴본다. 작업의 부산물, 쓰레기들이 발견된다. 그리고 어느 날은 그것이 쓰레기가 아닌 것도 같다.
이제 작업실에서 어둠을 맛보기 위해서는 눈을 감아야만 한다. 작업실 곳곳에서 빛나는 작업들 사이에서 어둠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눈을 감는 것이다.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나는 미처 모르던 빛들을 나의 작은 세계에서 마주한다. 나의 작은 세계가 점점 복잡해질수록 그곳에서 더 많은 별이 떠다니고 더 많은 작은 빛들 사이에서 잠이 든다. 어둠이라는 것을 작업으로 끌고 오면서 포근한 집과는 다른 곳에서 잠이 들어야 하는 날들이 이어지지만, 밤하늘보다도 더 자주 내 작업실에는 밝은 별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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