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개월 동안 군대에 있었다. 병장 월급 150만원. 이병 시절 75만원. 매달 55만원씩 장병내일적금에 부었다. 전역할 때 통장을 보니 2000만원이 넘게 들어 있었다. 덕분에 복학하자마자 등록금과 원룸 계약금을 한 번에 냈다. 이게 바로 국방의 의무에 대한 보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역한 병장 김준호(23·가명)
“나는 그 18개월 동안 주말마다 카페 알바를 뛰었고 평일엔 수업에 시달렸다. 한 달에 180만원 정도 벌었고 적금은커녕 생활비 빼고 남는 게 없었다. 같은 나이인데 같은 1년 반인데 기회가 너무 달랐다.” -대학생 정은서(23·가명)
2025년 기준 대한민국 20대 초반 청년들은 생애 가장 중요한 1~2년을 완전히 다른 공간에서 보낸다. 남성은 군복을 입고 18개월을 병영에서, 여성은 대학 강의실과 알바 현장을 오간다. 국가가 부여한 차이다.
한데 이 1년 6개월의 시차는 자산격차로 이어졌다.
29일 여성경제신문이 2025년 국방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병사 월급은 병장이 150만원으로 가장 높다. 가장 낮은 계급인 이병은 75만원, 일병 90만원, 상병 120만원 순이다.
여기에 ‘장병내일준비적금’을 통해 월 55만원씩 저축하면 18개월 즉 1년 6개월 동안 최대 2000만원의 목돈을 손에 쥘 수 있다. 이 제도는 병사가 매달 일정 금액을 적립하면 정부가 동일한 금액을 매칭해주는 방식이다. 2024년부터는 원금의 100%까지 지원하며 실질적인 자산 증식 효과를 가져왔다.
실제로 복무를 마친 전역 병사들 중 70% 이상이 “전역 후 학자금·창업자금·해외연수 자금으로 요긴하게 활용했다”고 답했다. 국방부는 “병역의무를 다한 청년에게 경제적 발판을 제공하겠다”는 입장이다.
같은 나이대의 여성은 군 복무 대신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대학 생활을 택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대 여성의 55.2%가 ‘파트타임’을 경험 중이다.
2025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 30원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주 40시간, 월 209시간 근무 시 209만 6270원. 병사는 식비와 생활비 지출이 상대적으로 적다. 반면 대학 생활을 하는 여성은 실제 생활비, 교통비, 등록금 등을 제외하면 저축 가능한 금액은 많아야 20~30만원 수준. 18개월간 최대 360만원~540만원 정도다. 병사 대비 4~6배가량의 차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만 18세~24세 학생의 경우 한달 생활비로 평균 64만 6116원을 쓰고 있고 부모님 지원을 받는 비율은 53%다. 2021년까지 자료로 물가 상승률을 반영하면 2024년에는 평균 86만원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형식상 이 구조는 공정하다. 군 복무는 의무이고 이에 따른 보상이 지급되는 셈이다. 그러나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여성 청년들은 국가의 부름을 받지 않았고 ‘기회의 공백’만을 마주한다.
서울 소재 A대학에 재학 중인 김예진(22) 씨는 여성경제신문에 “남자친구는 군대에서 2000만원 모았는데 나는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고작 400만원 모았다. 국가가 일부 청년에게는 자산 형성 기회를 주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이 문제를 단순히 성별 대립으로 볼 수 있을까.
김명섭 한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군 복무 보상은 정당하다. 다만 이 보상을 ‘전체 청년의 자산 형성 정책’으로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병역 대신 사회봉사를 하는 여성이나 비군 복무자에게도 유사한 적립식 지원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청년불평등 해소를 위해 “군복무자는 ‘장병적금’, 여성은 ‘청년내일적금’에도 동등한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일반적인 지자체 청년내일저축계좌의 경우에도 기준 중위소득 기준이 있다. 1년 6개월의 시간 동안 병사 대다수가 혜택을 받는 장병내일준비적금과는 혜택 차이가 크다는 것.
독일은 징병제 폐지 이후 일정 기간 사회복무에 참여하는 청년에게도 월 400유로(약 60만원) 지원금과 별도 주거 지원금을 지급한다. 핀란드는 군 복무자와 비복무자의 월급 차이를 정부가 직접 매꾸며 자산 형성 기회를 동일하게 보장한다.
김명섭 교수는 "군 복무는 자랑스러운 의무이자 헌신이다. 그러나 이를 ‘경제적 특권’으로 전환할 순 없다. 지금이야말로 병역보상 정책의 그림자를 다시 살피고 전 청년층의 자산형성 기회를 함께 고민할 때"라고 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Copyright ⓒ 여성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