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백두산 기자] 수도권 집중과 지역 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타개할 교육 개혁 담론이 국회에서 다시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핵심으로 한 대학체제 개편 논의가 단순한 대학 서열 개편이 아닌, 지역 균형 발전과 교육의 공공성 강화, 청년 일자리 창출까지 아우르는 총체적 국가 전략으로 제안됐다.
29일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실에서 열린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토론회’에는 전·현직 교육감과 거점국립대 총장, 교육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해 구체적 실행 방안을 두고 뜨거운 논의를 벌였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2021년 김종영 경희대 교수가 동명의 저서를 통해 본격 제기한 이후, 2022년 대선과 2024년 총선을 거치며 정치권의 주요 의제로 부상했다. 이날 토론회는 이 구상이 단순한 선언을 넘어 실현 가능한 정책 설계로 이행하기 위한 첫 단추였다.
김영호 국회 교육위원장은 축사를 통해 “수도권 집중과 치열한 입시 경쟁 구조가 지역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있다”며 “지역 거점대학들을 서울대 수준으로 집중 투자해 상향 평준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역 인재가 지역에서 배우고 정주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어야 지방 소멸과 저출생이라는 국가 위기를 막을 수 있다”며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대한민국이 함께 잘사는 길을 여는 열쇠”라 평가하면서 국회 차원의 적극적인 뒷받침을 약속했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차정인 전 부산대 총장은 “지방대의 몰락은 단지 교육 현장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존립의 문제”라며 “이제는 지역에서 서울대급 대학을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라, 만들어야만 한다는 전제 위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종영 교수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국가 생존전략” = 이날 첫 번째 발제에 나선 김종영 경희대 교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교육지옥 해체, 지방소멸 방지, 수도권 집중 해소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세계 각국 사례를 인용해 “글로벌 경쟁 시대에 세계 수준의 대학이 지역 경제와 인구 구조를 바꿀 수 있다”며, 미국 텍사스 오스틴 사례를 핵심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지방에 세계적 대학이 없기 때문에 기업도, 청년도, 연구 자원도 떠난다”며 “서울대 수준의 대학을 지역에 만들어야 이 구조가 역전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에만 몰린 3만 명의 인재를 분산시키는 것만으로도 수도권 블랙홀을 해소할 수 있다”며 1인당 교육비, 인프라, 병원·산업클러스터 결합 등을 통해 9개 거점국립대를 집중 육성하는 전략을 제안했다. “정치권이 결단만 한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김 교수는 “거점국립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공동학위제, 공동입학제를 도입해 대학 간 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며 “이는 파리 대학들의 통합 사례처럼 위계 없는 고등교육 구조를 만드는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런 체제가 정착되면 수도권 대학이 아니라, 특성화된 지역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더 전략적인 선택이 되는 날도 머지않다”고 전망했다.
■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 대학 체제 개편으로의 도전 제시 = 두 번째 발제자인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은 대학 서열 체제를 타파하고, 수직적 위계에서 수평적 다양성 구조로의 전환 필요성을 역설했다.
조 전 교육감은 “저출생 문제, 입시 과열, 수도권 블랙홀 현상 모두가 대학 구조와 연결돼 있다”며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광역생활자립권’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뒤 “서울대 10개를 중심으로 교육·의료·청년 일자리가 결합된 자립적 생태계를 지역에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 전 교육감은 “서울대병원 수준의 병원, 판교 수준의 첨단산업 클러스터를 각 광역경제권에 조성하고, 국립대 간 협력체제를 통해 공동입학·공동학위 등으로 서열구조를 완화해야 한다”며 “파리 1대학~13대학처럼, 한국 1대학~10대학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외에도 조 전 교육감은 “서울대를 포함한 10개 국립대학이 연합체를 구성하고, 각 대학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특성화 분야에 집중 투자받아야 한다”며, 특성화 중심 연구 대학 육성 전략도 제시했다.
■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대학 통합·재정 확대 등 실행 방안 제안 = 이어진 종합토론에서는 양오봉 전북대 총장과 고창섭 충북대 총장이 나서 “거점 국립대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의 80%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며 “전일제 대학원생 확대, 학과 통합, 중장기적 국립대 통합 체계 도입” 등을 제안했다.
박종훈 경남도교육감은 “‘서울대 10개’라는 이름 대신 ‘한국대 10개’라는 명칭이 적절하다”며 “지방대학 간 네트워크와 공동학위제 등 실질적인 협력 시스템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특히 “학벌이 아닌 교육의 질로 대학을 선택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며, 이를 위한 입시제도 개혁과 사회적 인식 변화의 병행을 촉구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이 정책이 지역균형 발전을 넘어 대한민국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며 “특성화 중심의 연구역량 강화와 국책연구기관과의 연계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서울대만이 세계적 대학일 수 없는 시대”라며, “지역 거점대학이 글로벌 연구 중심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가 과감한 개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무리 발언에 나선 차정인 전 부산대 총장은 “이번 토론회는 단순한 대학 정책이 아니라 교육 정상화와 국가적 위기 해결을 위한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다”며, “입법과 재정 지원 등 후속 조치를 위한 국회와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학벌에 기반한 수도권 중심 사회에서, 실력과 다양성 기반의 다핵형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철학이 정책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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