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야산을 걷다 보면 하얀 꽃무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치 나무 위에 눈이 쌓인 듯 보이는, 혹은 바람에 흩날리는 솜털처럼 보이는 이 식물의 이름은 사위질빵이다.
미나리아재비과 으아리속에 속하는 이 낙엽 덩굴식물은 한국의 산과 들, 계곡과 하천변, 심지어 밭둑과 길가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는 친근한 존재다. 사위질빵이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사위질빵에 대해 알아봤다.
사위 걱정에서 탄생한 독특한 이름
사위질빵이라는 이름은 듣는 순간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 이름은 강원도 방언에서 비롯됐다. ‘사위질방’이 된소리로 변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질빵’은 지게를 지기 위해 어깨에 걸치는 끈을 뜻하고, ‘사위’는 말 그대로 사위를 가리킨다. 이 이름의 기원은 옛 농촌 풍습과 얽혀 있다.
과거 가을 추수철이면 사위가 처가에 방문해 농사일을 돕는 일이 흔했다. 귀한 사위를 아끼던 장모는 사위가 무거운 짐을 지지 않도록 배려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장모는 사위의 지게에 사위질빵의 연약한 덩굴로 질빵을 엮어 줬다.
사위질빵 덩굴은 조금만 힘을 줘도 툭 끊어진다. 무거운 짐을 지려 하면 금세 끊어져 사위가 힘들지 않도록 했다는 이야기다. 이로 인해 사위가 짐을 덜 지게 됐다는 우스갯소리가 퍼졌고, 이 식물은 사위질빵이라는 재치 있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또 다른 설로는 이 식물의 연약하고 쉽게 마르는 줄기와 꽃차례가 여위, 즉 ‘여자가 생기를 잃어 시드는’ 한자어와 연결돼 이름이 붙여졌다는 해석도 있다. 강원도에서는 ‘사위질방’으로, 북한에서는 ‘사위질빵’으로 불린다.
지역에 따라 질빵줄, 모란풀, 수레나물 같은 다양한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이들 이름은 모두 사위질빵의 가냘픈 생김새와 농촌의 따뜻한 온전을 반영한다.
햇살 따라 자라는 덩굴, 사위질빵 서식지
사위질빵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 덩굴식물이다. 목질화된 줄기가 나무처럼 여러 해를 산다. 길이 1~8m까지 자란다. 어린 가지에는 잔털이 있고 연한 갈색 껍질을 지닌다.
잎은 마주나며 3출 복엽, 즉 세 개의 작은 잎으로 이뤄진 겹잎 형태다. 작은 잎은 달걀모양에 톱니가 드문드문 나 있고, 앞면은 처음엔 털이 있다가 점차 사라지며 뒷면 맥 위에는 잔털이 남는다.
사위질빵은 한국 전역의 산야, 특히 햇볕이 잘 드는 숲 가장자리, 계곡, 하천변, 밭둑, 과수원 주변, 길가, 빈터 등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다. 일본과 중국에도 분포한다. 추위에는 강하지만 그늘이나 대기오염이 심한 곳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
봄철에는 지난해 뻗은 땅속 기는줄기에서 새순이 돋아나, 주변 물체를 타고 사방으로 벋으며 덩굴을 형성한다. 여름이 되면 무성한 줄기와 잎이 나무, 풀, 울타리, 담장을 뒤덮는다.
식용으로는 어린순을 채취해 사용한다. 어린순은 4~5월에 돋아난다. 이 시기 잎과 줄기가 부드럽고 연해 요리에 적합하다. 꽃은 7~8월에 피고 열매는 9~10월에 익는다. 7~9월에는 잎겨드랑이에 흰색 꽃이 취산상 원추꽃차례로 달린다.
꽃은 지름 13~25mm로, 꽃잎은 없고 4개의 넓은 피침형 꽃받침이 십자형으로 퍼진다. 수술과 암술은 많으며, 수술은 꽃받침과 길이가 비슷하다. 열매는 수과로, 5~10개가 바람개비 모양으로 모여 달리며, 끝에는 약 1cm 길이의 암술대가 붙어 있다. 열매는 가을에 익으며, 흰 털이 솜털처럼 부풀어 올라 바람을 타고 씨앗을 퍼뜨린다.
요리법, 맛, 그리고 효능
봄철 산과 들에서 자라는 사위질빵은 어린순을 나물로 먹을 수 있는 식물이다. 줄기와 잎이 부드럽고 진한 녹색을 띠며, 주로 양지바른 풀밭에서 자란다.
이 식물은 독성을 포함하고 있어 반드시 데친 뒤 찬물에 여러 번 우려내야 한다. 생으로 섭취하거나 충분히 데치지 않으면 위장 장애나 자극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어린이와 노약자는 과도한 섭취를 피하는 것이 좋다.
가장 흔한 조리법은 나물무침과 된장국이다. 어린순을 끓는 물에 2~3분 정도 데친 뒤, 찬물에 2~3번 담가 쓴맛과 독성을 제거한다. 물기를 꼭 짜낸 후 양념을 넣어 무치거나 국물 요리에 사용한다.
나물무침은 사위질빵 100g 기준으로 준비한다. 양념은 진간장 1작은술(5ml), 참기름 1작은술(5ml), 고춧가루 1작은술(2g), 다진 마늘 0.5작은술(2g), 깨소금 0.5작은술(1g)을 섞어 사용한다. 데친 나물에 양념을 넣고 골고루 무치면 된다.
된장국은 데친 사위질빵 70g을 기준으로 한다. 멸치 다시물 2컵(400ml)에 된장 1큰술(15g), 다진 마늘 1작은술(4g), 송송 썬 대파 1/3대, 두부 약간을 넣어 끓인다. 중불에서 7분 정도 끓인 뒤 대파와 두부를 넣고 2~3분 더 끓이면 완성된다.
사위질빵은 쌉싸름한 풋내가 있지만, 데치고 양념하면 특유의 신선한 향과 부드러운 식감이 살아난다. 나물 반찬으로 밥상에 올리면 담백한 맛이 식탁을 채운다.
민간에서는 사위질빵의 줄기와 뿌리를 말려 탕으로 끓여 마시기도 했다. 예로부터 몸이 붓거나 관절에 통증이 있을 때 사용됐으며, 따뜻한 성질을 지닌 식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약용으로 활용할 경우 전문가의 조언 없이 사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사위질빵은 손질이 번거롭지만, 제대로 준비하면 봄철 산나물로서 제값을 한다. 단, 반드시 데치고 우려내는 과정을 거쳐야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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