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적극적인 저항정신' 추구하는 신화의 섬"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제주도는 적극적인 저항 정신을 추구하는 신화의 섬입니다. 영악한 악에 맞서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해 제주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제6회 제주4·3평화상을 수상한 벨라루스 출신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Svetlana Alexievich·77)는 29일 메종글래드 제주에서 열린 수상자 기자회견에서 "오늘날 적극적인 저항 정신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기에 작가로서 이걸 더 어떻게 발전시킬지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번에 3번째로 한국을 찾았다는 그는 과거 첫 한국 방문 때 작가들과 만난 자리에서 4·3을 처음 접했다고 한다.
그는 "그때 한 작가가 저를 '재난 작가'라고 칭하기에 '재난이 아니라 저항하기 위해 힘을 축적하고, 혼과 정신을 축적하는 것을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답하자, 한국에도 저항 정신을 담은 섬이 있다고 알려줘서 '레드 아일랜드'(붉은 섬)에 대해 듣게 됐고, 그 사건(4·3)을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계엄 사태를 비롯한 최근 한국 상황에 대해서는 "'민주주의를 믿었어야 했구나. 민주주의에는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저항의 힘이 있었는데, 당황할 필요가 없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저항할 힘도, 뚝심도 없다'고 생각하던 차에 최근 한국 상황을 보게 됐다. 이런 역사적 사건에서 배울 수 있는 하나의 교훈은 시민 저항이야말로 진정한 힘이라는 것"이라며 "시민 저항의 경험과 그것을 공유하는 것을 한국 사회가 전 세계에 보여주고 증명해줬다"고 역설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 사망자 소식을 들으면서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우리가 적응하고 있는 삶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지만, 그런데도 '이건 아니지'라고 저항 정신을 상기시켜야 한다"며 저항 정신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총체적 악(惡)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공포심 앞에서 놀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군중의 합창에 휩쓸리지 않고 외딴 데서 지켜보면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돌파구"라며 "그러면 결코 평범하지 않은, 범상치 않은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제2차 세계대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체르노빌 원전 사고, 소련 붕괴 등 역사적 사건에서 취약하고 상처 입기 쉬운 개인, 특히 여성·아동의 고통과 생존 서사에 귀 기울여왔다.
그는 구술을 바탕으로 한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해왔다. 특히 냉전과 소련 해체 이후 전쟁과 민간인 학살의 기억을 포착하고 침묵을 강요당한 자들의 목소리를 수집했다.
대표작 중 하나인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남성 중심의 전쟁 서사에서 목소리를 갖지 못했던 여성들의 고통과 생존의 증언을 상세하게 담아냈다.
그는 구술 채록을 통한 글쓰기가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삶을 다루는 후세대의 구술사와 문학 작업에 큰 영향을 준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알렉시예비치는 오는 30일 오후 4·3평화공원을 참배하고 위패봉안실과 상설전시실 등 공원 내 주요 공간을 둘러볼 계획이다.
다음 달 1일 오후 3시 제주문학관에서는 제6회 제주4·3평화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와 함께하는 북 토크 '기억을 기록하다: 목소리 없는 이들을 위한 문학'이 열린다.
ato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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