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구씨 작가] 대학 졸업함 동시에 문화재단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문화재단, 아르코 그리고 예술경영지원센터 사업의 차이도 구분 못하던 나는 일을 하며 눈치껏 여러 사업들을 파악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예술지원사업’을 알게 되었고 가끔은 누군가의 기획서를 볼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일을 하기 위해서 읽었지만 읽다 보니 ‘이렇게 쓰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생각해보면 대학에서도 기획서를 쓰는 수업이 있었다. 그러나 교수님이 열성적으로 어필했던 기획서의 필요성보다 눈앞에서 직접 본 기획서가 배로 강력했다. 마치 소문으로만 듣던 용을 실제로 마주한 하는 것과 같았다. 이런 일이 진짜로 일어나고 필요하다니…
지금은 너무나 익숙하지만 지원사업의 기획서 형식을 처음 접하는 예술인은 충격적일 것이다. 예술은 애초에 답이 없는 창의적인 방식으로 가득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기획서는 예술이 언어라는 도구와 가장 가까운 관계를 맺고 하나의 결과물을 미리 예언할 수 있다는 것을 떡하니 보여준다. 어쩌면 예술이라는 학문을 처음부터 오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기획 배경’ ‘목적’ ‘기대효과’, 이렇게 딱딱한 문제에 답을 하면서 공간과 시간을 채우는 전시나 프로젝트를 만들기 이전에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때에는 머릿속에서 바로 연결되지가 않았다. 그리고 약 1년간 기획서 자체에 대해 의심 가득한 생각을 하곤 했다. 글로 쓰일 수 있는 작업이 굳이 다시 작품으로 만들어질 이유를 궁금해했고, 기획서 자체가 결말을 알고 있다면 그것을 굳이 실현시켜야 하는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그동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매해 공간 공모까지 포함한다면 약 30개의 지원서 중 2~3개가 선정되는 나만의 경쟁률 안에서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어느새 지원서의 폼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를 발견한다. 전시에 앞서 기획의도와 배경 목적 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는 아주 빠르게 길들여졌다. 그 사이 작품을 ‘전시’라는 결과를 위한 도구로 생각하기도 했고 아무것도 시작되거나 끝난 적이 없었음에도 전시가 ‘시작!’되고 나면 그제야 작업이 끝났다는 감정이 드는 것이 혼란스럽기도 했다. 내가 가까워진 예술계만큼 교육되었고 경직된 것을 느낀다.
올해 3월부터 넣어왔던 많은 지원사업들은 우후죽순 미선정 연락을 전해주었다. 익숙하지만 하나의 문자와 메일에 길거리에서 문득문득 울적해진다. 가야 하는 곳에 가고 해야 하는 일을 잘 해내면서도 기분은 울적하다. 홀로 나를 다독이는 과정은 힘든 일이다. 올해의 지원사업은 평균보다도 선정되는 횟수가 더 떨어진다. 지금의 예술 사업의 흐름이 약간 보수적인 부분이 있다며 선정되지 못한 이들이 모여 서로를 다독이듯 이야기를 하지만 분명 좋은 작업과 전시들이 선정되었을 것이다. 미선정이라는 연락에 서운함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선정되지 않은 해에도 더 많은 전시와 프로젝트에 관람자로 또는 참여자로 참여하는 것, 그들은 어떤 것들을 보았는지를 기획의 쪽이 아닌 참여자의 쪽에서 바라보는 시간을 즐겁게 갖는 것이 올해의 또 다른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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