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달라진 산불 양상…대응시스템 대전환 필요
역대최악 경북산불 1달 만에 또…장비·인력체계 이번엔 제대로 점검해야
(대구=연합뉴스) 김용민 기자 = 대구 도심 산불을 계기로 산불 대응에 대한 획기적 발상 전환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번 산불은 사상 최악 산불로 기록된 경북 산불이 일어난 지 1달여 만에 발생했다.
기후변화 등 영향으로 산불이 상시화·대형화하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시도 때도 없이, 한번 발생했다 하면 크게 번지는 것이 최근 산불의 특징이다.
이런 환경 변화에 맞는 체계적인 산불 대응 시스템 대전환과 장비·인력 대책이 절실한 것으로 보인다.
29일 산림당국 등에 따르면 전날 대구 도심에 있는 함지산에서 난 산불은 발생 23시간 만인 이날 낮 12시 55분께 주불이 진화됐다.
밤새 인근 주민 500명가량이 대피소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고 주변 도로는 교통이 통제돼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산림이 타면서 발생한 연기가 대구 동부지역을 넘어 경북 경산까지 퍼지면서 주민들이 외출을 하지 못하는 등 '홍역'을 치렀다.
이번 산불은 사상 최악의 경북 산불이 발생한 지 1달이 막 지난 시점에 난 것이어서 시·도민들은 "악몽이 재현되는 거 아니냐"며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 "이젠 도심도 산불 안전지역 아니다"
이번 대구 함지산 산불은 대도시 도심 야산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여타 산불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줬다.
농촌지역과는 달리 도심 산불은 순식간에 다중이 밀집한 시설로 불이 쉽게 번질 수밖에 없는 취약성이 있다.
함지산 산불도 발생 초기에 인근 연립주택 근처까지 번지면서 한때 긴박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소방당국과 경찰, 관할 구청 등이 발 빠르게 주민을 대피시키면서 별다른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하마터면 큰 불상사로 이어질 뻔했다.
대구뿐 아니라 서울, 부산 등 우리나라 도시들은 거의 산을 끼고 있어서 언제든지 비슷한 위험에 맞닥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기후 변화에 산불 상시·대형화
산불이 기후 변화로 인해 시도 때도 없이, 또 한 번 났다 하면 크게 번지는 일이 최근 들어 잦아졌다는 얘기는 상식이 돼가고 있다.
10여년 전만 해도 대체로 2월부터 시작해 길어야 4월까지를 실질적인 산불조심 기간으로 설정해 입산 단속 등을 해 왔다.
날씨가 건조해 나뭇잎이나 낙엽이 바싹 말라 있고 바람마저 다소 세게 불어 산불이 발생하기 쉬운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후 5월이 되면 조금씩 습도가 높아지고 나무도 수분 흡수량을 늘리면서 산불에 덜 취약한 조건이 형성돼 산불 걱정을 덜곤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5월은 물론 3~4월부터 초여름을 방불케 하는 낮 기온을 기록하는 등 고온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산불 발생이 급증하는 추세다.
산림청에 따르면 1980년대 연평균 240건 정도 발생하던 산불은 2020년대 들어 연평균 600건에 육박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봄·가을 산불조심기간 이외 시기에 산불이 발생한 비율도 30%에 육박했다.
산불 피해 면적 또한 1980년대 연평균 1천112ha에서 2020년대 연평균 8천369ha로 크게 늘었다.
◇ 장비·인력이 문제…지자체 헬기 임차 국비지원 절실
짧은 시간에 큰 인명과 재산 피해가 예상되는 도심 산불을 효율적으로 진압하기 위해서는 지자체가 빌려 쓰는 헬기 비용을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게 거론된다.
전국적으로 지자체들이 임차한 헬기는 지금까지 78대 정도이며 대구시는 4대를 운영 중이다.
산불이 발생해 확산할 경우에 소방, 산림, 군 당국도 헬기를 지원한다.
특히 이번 대구 함지산 산불에는 야간 진화작업이 가능한 수리온 헬기를 현장에 투입해 진화에 큰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산불에 가장 빨리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지자체 임차 헬기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상당수 지자체가 재정 여건이 열악해 헬기 구매는 고사하고 임차 비용을 감당하는 것도 버거운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대형 진화 헬기 확충과 동시에 지자체 헬기 임차 비용 지원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됐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임차 헬기 구매 또는 임차 비용과 부품 교체·정비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산불 헬기 도입 의무지원법'이 최근 국회에 제출돼 결과가 주목된다.
◇ 입산 단속·도심 시설보호 '시급'…대부분이 실화
대구 함지산 산불은 현재 원인을 조사 중이지만 결국 입산자 실화일 가능성이 높다.
불이 시작된 지점이 평소 사람들이 많이 찾는 등산로에서 벗어난 곳으로 알려지면서 입산 단속이 좀 더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대구를 비롯한 전국 도심 인근 상당수 등산로는 별도 행정 조치가 있을 때까지 입산을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등산로 입·출구에만 단속 요원 1~2명만 배치해 등산객의 입산을 막을 뿐 등산로 입구가 아닌 오솔길 같은 곳은 사실상 단속에서 벗어나 있다.
방대한 야산 일대를 빈틈없이 관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도심 등산로와 야산 주변 순찰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함께 도심 산불로 인한 주택, 각종 시설 보호책도 중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야산에 인접한 공동주택 등에 소화 시설을 확충하고 산불 발생 상황을 가정한 대피 훈련을 주기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화재를 키울 수 있는 위험물 저장 시설과 산업시설 등을 대상으로 안전 점검, 스프링클러 등 소방 설비 점검을 강화해야 할 것으로 지목된다.
최영상 대구보건대 소방안전과 교수는 "도심은 주유소 등 위험물 저장 시설이 상대적으로 많고 주택과 건물도 밀집해 있어 화재가 커질 가능성이 크다"며 "도심 특성을 고려한 산불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yongm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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