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서원 작가] 그러나 관람자는 언제나 전시 설계자의 의도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아니었다. 같은 유물을 보더라도 관람자들은 자신만의 인상과 해석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 점에서 전시는 설계된 해석의 틀을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해석의 균열 가능성을 내포하는 공간이었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전시 공간은 더욱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20세기 중반 이후 현대미술관은 단순한 소장품 전시를 넘어, 전시 자체를 하나의 담론 생산 장치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 파리 퐁피두센터, 런던 테이트 모던 등은 전시를 통해 새로운 미학적 흐름과 사회적 담론을 제안하는 기관으로 자리잡았다. 작품을 단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전시의 성격이 변모했다.
특히 비엔날레 형태의 국제 전시는 전시를 국가 간 문화 경쟁의 장으로 만들었으며, 글로벌 네트워크 속에서 전시의 정치성과 문화정치학적 의미를 강화시켰다. 베니스 비엔날레, 상하이 비엔날레, 광주 비엔날레와 같은 국제 전시는 전시 자체가 권력, 경제, 문화 담론의 교차점이 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이와 동시에 관람자는 점차 단순한 감상자에서 적극적인 해석 주체로 변화했다. 설치미술, 참여형 전시, 미디어 아트와 같은 새로운 형식들은 관람자의 신체적 이동과 선택을 요구했다. 관람자는 더 이상 정해진 흐름을 따르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전시의 의미를 구성하는 적극적 주체로 변모했다. 이러한 흐름은 전시를 고정된 감상의 틀로부터 해방시키는 가능성을 열어주었지만, 동시에 관람자 역시 전시 기획의 구조 속에서 여전히 일정한 시선을 훈련받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전시 공간의 변화는 미술의 내용과 형식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작품은 독립적 존재로서 전시되는 대신 전시 공간 자체의 연출과 맥락 속에서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특히 키워드 큐레이션 방식이 도입되면서 작품 간의 관계성이 강조되고, 전시 전체가 하나의 내러티브를 형성하는 방식이 보편화되었다. 관람자는 개별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시장이 제안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감상하는 구조에 놓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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