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이 일상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주요 보험사들의 자동차보험 약관이 기후위기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 주목된다.
소비자시민모임과 기후솔루션은 "삼성화재, DB손해보험, 현대해상, 메리츠화재, KB손해보험 등 5대 손해보험사를 상대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자동차보험 약관 불공정 약관 심사를 청구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들이 문제 삼은 조항은 이들 보험사가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개인용 자동차보험 약관 중 지진, 홍수, 태풍, 해일 등 자연재해를 ‘천재지변’으로 규정하고 보상을 제한하는 내용이다.
통상 보험사들은 예측이 불가능한 천재지변을 보상 제외 대상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기후솔루션은 “기후위기 시대에는 이런 사고들이 더 이상 드문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 됐다”며 기존 관점이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에 의해 폭우, 산불, 홍수 같은 재난 발생 위험이 급격히 높아진 상황이다.
청구 단체는 특히 보험사가 기후위기의 단순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 역할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보험사들은 석탄·석유 등 고배출 산업에 보험상품을 제공하고, 자산운용을 통해 관련 기업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왔다. 이로 인해 국내 10대 손보사의 연평균 보험배출량은 약 40만톤에 이르며, 금융투자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연간 약 2600만톤으로 추정된다. 이는 대한민국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4%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영주 변호사(법무법인 원)는 "천재지변에 대한 면책 조항은 보험사의 경영 안정성을 고려해 허용돼왔지만, 기후위기 심화에 일조한 보험사가 보상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보험사가 기후위기 리스크를 외면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위태롭게 한다는 경고도 나왔다. 자연재해가 빈번해질수록 보험금 지급 규모가 커지고, 이는 보험사의 재무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2022년 여름 수도권에 발생한 폭우로만 약 5000대 차량이 침수되어 4개 손보사에 접수된 손해액이 약 560억 원에 달했다.
고동현 기후솔루션 기후금융팀장은 "보험사들은 기후위기를 촉발하고 손실 리스크를 키우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석탄발전 운영보험 중단과 화석연료 산업 투자 축소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도 "보험사들이 자신들이 키운 기후위기의 피해를 '천재지변'이라며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보험사는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공정위 청구는 보험산업과 기후위기 책임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첫 사례로, 향후 자동차보험뿐 아니라 화재보험, 생명보험 등 다른 분야 약관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뉴스로드] 박혜림 기자 newsroad01@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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