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한화생명의 과거 대주주 거래제한 제재와 관련된 법원 판결이 금융권 안팎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는 한화생명이 계열사와의 거래에서 자산을 무상으로 제공했다는 이유로 금융당국으로부터 기관경고를 받았으나, 법원에서는 해당 행위가 보험업법상 자산거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한화생명에 손을 들어준 사례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에 따라 계열사 간 거래 형태가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현행 법령은 전통적 자산거래 중심 규제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오는 상황이다. 이에 금융당국 또한 비전통적 내부거래를 포괄하는 제도 개선을 준비하는 모양새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화생명은 내부 통제 부실 등에 대한 금융당국 제재를 비롯, 여러 경영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
지난해에는 국내 보험사 가운데 가장 많은 6건의 기관제재를 받은 바 있으며 올해도 배당 재개 여부를 둘러싼 논란과 함께 지급여력비율(RBC) 하락, 그룹 내 승계 및 지배구조 재편 이슈까지 겹치면서 경영 리스크가 가중되고 있다.
한화생명은 내부통제위원회 신설이나 사외이사 재선임 등을 통해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금융감독원의 고강도 검사와 영업 관행에 대한 조사 등으로 압박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주주 거래제한 규제, 한화생명 승리…해석 범위는 ‘제도적 한계’
이런 가운데 지난달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 2019년 한화생명의 대주주 거래제한 위반 사건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대법원은 보험업법상 금지되지 않은 거래라며 한화생명의 손을 들어줬지만, 현행법상 제도적 한계가 드러났다는 지적에서다.
당시 한화생명은 서울 여의도 63빌딩 임대차 계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계열사인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를 임차인으로 들이기 위해 기존 임차인에게 72억원의 손해배상금을 대신 지급하고, 새 임차인에게는 약 8억원에 달하는 관리비를 면제해줬다.
금융당국은 이를 보험업법상 ‘대주주에 대한 자산 무상제공’에 해당한다고 보고 중징계를 내렸다.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대주주 또는 대주주 관련자에게 자산을 무상 제공하거나 이에 준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이후 해당 사건은 법정으로 갔고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한화생명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임대차 계약은 영업 행위의 일환이며, 일정한 손실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경영상 필요에 따라 이뤄진 결정이라는 점을 들어 보험업법 위반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임대차·용역거래는 보험업법상 자산 무상제공 금지 규정에 열거된 행위가 아니며, 경영 판단의 영역”이라며 금융당국의 제재를 부당하다고 봤다. 결과적으로 한화생명의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해당 판결은 보험업법상 대주주 거래제한 규제의 해석 범위를 놓고 제도적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경영학과 교수는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보험사가 단순한 자산거래뿐 아니라 데이터 이전, 플랫폼 공유, IT서비스 계약 등 비전통적 형태로 계열사 지원에 나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짚었다.
실제 현행 규제 체계로는 이 같은 신유형 거래를 포착하거나 규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12년 전인 2013년에도 금융당국이 보험업법 상 자산거래 이외의 용역거래에 대한 불건전 거래를 지양해 달라는 공문을 생명·손해보험협회를 통해 전달했을 정도다.
대주주 규제 본질은 결국 사적이익 방지…현실 반영돼야
금융위원회 역시 이런 문제의식을 반영해, 지난 3월 발표한 2025년 업무계획에서 “디지털 플랫폼, 데이터 이전, IT서비스 계약 등 비전통적 내부거래가 확산되고 있으나 기존 자산거래 중심 규제로는 관리에 한계가 있다”고 인정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하반기 중 금융그룹 통합감독법 개정을 추진하고, 비자산성 거래를 포함하는 규제 체계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걸맞은 내부통제 기준과 대주주 거래제한 규정을 새로 설정하겠다는 의도다.
보험연구원(KIRI)도 지난 2023년 12월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비슷한 취지의 문제 제기를 한 바 있다. 보고서에서 보험연구원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데이터 이전이나 플랫폼 공유를 통한 계열사 간 이해상충 위험이 커지고 있다”며 “자산 중심의 현행 규제 체계로는 이를 충분히 규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금융그룹법과 지배구조법 등 관련 법률을 개정해 비자산성 내부거래까지 포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전환이라는 흐름 속에서 대주주 거래제한 규제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빠른 디지털 전환으로 현장에서는 다양한 비전통적 거래 유형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며 “입법적 보완도 필요하지만 결국 대주주 규제 본질은 보험사의 공적자산이 사적이익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는 목적인 만큼, 법 정신에 충실한 판결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판결은 경영판단 원칙을 강조하며 보험업법상 대주주 거래제한 규정의 해석 범위를 좁게 봤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디지털 전환 이후 등장하는 다양한 거래 유형까지 고려하면 규제 공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셈”이라며 “보험회사의 계열사 지원 거래는 사적 자치와 경영 효율성, 보험업의 공공성 사이에서 균형이 필요하다. 현행 규제의 한계가 드러난 만큼, 디지털 시대에 부합하는 규제 체계와 내부통제 기준을 명확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화생명 측은 대주주와의 용역거래 계약 시 다양한 내부통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대주주와의 용역 계약 시 일상 감시(감시인 결재), 내부거래 체크리스트 작성, 이사회 의결 등의 다양한 내부통제 절차를 거쳐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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