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협회·노인종합복지관협회 '어르신의 재치와 유머' 공모전 수상 작품집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저렇게 지는 거였구나 / 한세상 뜨겁게 불태우다 / 금빛으로 저무는 거였구나"
담담하게 인생의 황혼기를 노을에 비유한 단 세 줄의 글로 긴 여운을 남기는 이 시의 제목은 '저녁노을'(이생문 지음)이다.
"오월이면 / 하얗게 핀 찔레꽃 / 어머니가 거기 서 있는 것 같다 / 엄마하고 불러보지만 / 대답 대신 하얗게 웃는다 / 언제나 머리에 쓰던 하얀 수건 / 엄마는 왜 맨날 수건을 쓰고 있었을까 / 묻고 싶었지만 / 찔레꽃 향기만 쏟아진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모습을 들에 하얗게 피어나 향기를 쏟아내는 찔레꽃에 빗대 애틋한 그리움을 표현한 이 시는 '찔레꽃 어머니'(김명자 지음)다.
이 시들은 한국시인협회와 대한노인종합복지관협회가 공동 주최한 제2회 '어르신의 재치와 유머' 짧은 시 공모전에서 각각 대상과 최우수상을 받았다.
시인협회와 노인종합복지관협회는 공모전 수상 작품집 '꽃은 오래 머물지 않아서 아름답다'를 최근 펴냈다.
65세부터 100세까지의 지원자가 총 8천500여편의 응모작을 제출했고, 이 중 대상 1편, 최우수상 1편, 우수상 10편 등 77편의 엄선된 시가 책에 실렸다. 작년 1회 공모전에 5천800여편이 접수된 것과 비교해 열기가 더 뜨거워졌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지원자의 이름 없이 제목, 나이, 시 본문만 보고 블라인드 방식으로 심사했으며, 그 결과 이미 데뷔한 기성 시인 몇몇이 본심에서 탈락했다고 한다.
수록작들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시니어들이 지은 시답게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정서,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슬픔, 자녀를 향한 애틋한 사랑 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대부분 짧은 분량임에도 지나온 긴 세월 동안 쌓은 지혜와 통찰력이 묻어난다.
"고기는 있는데 치아가 없다 // 시간은 있는데 약속이 없다 // 자식은 있는데 내 곁에 없다 // 추억은 있는데 기억이 없다"(정남순 시 '무슨 소용 있나' 전문)
"문안 전화 받으면서 / 나는 잘 있다 / 느그나 잘 있거라 // 수화기 내려놓으면서 아이고 죽겄다"(전형수 시 '거짓말' 전문)
"필 때는 저마다 더디 오더니 / 질 때는 하르르 몰려가더라"(김용훈 시 '봄꽃' 전문)
책의 제목은 우수상을 받은 시 '간격'(박인숙 지음)에서 따 왔다. 이 시는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을 변형한 것으로, 관계에 대한 지혜를 담았다.
"자세히 보지 마세요 / 오래 보지 마세요 // 자세히 보면 주름투성이 / 오래 보면 약점투성이 // 무지개는 멀어서 예쁘고 / 꽃은 오래 머물지 않아서 아름답고 // 우리 사이는 / 적당한 간격으로 인해 / 편안하지요"('간격' 전문)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심사위원을 맡은 나태주 시인은 "노년을 사시는 분들에게는 젊은 분들이 갖지 못한 삶에 대한 경륜이 있고 지혜가 있다. 또한 인생을 꿰뚫어 보는 통찰이 있을 수 있다"고 짚었다.
나 시인은 이어 "그걸 그냥 묵혀두는 것은 아까운 일"이고 "드러내어 스스로도 확인하고 이웃들과도 나누고 보다 젊은 세대들에게도 남겨주어야 할 일"이라며 "그런 방법 가운데 하나가 짧고 간결한 시 문장의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썼다.
문학세계사. 이생문 외 지음. 김우현 그림. 200쪽.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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