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 박수남 기자] 한국 전쟁 직후부터 1980년대까지는 군사독재 아래 노동조합 활동이 엄격히 통제되었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이후에야 기업별 노동조합 결성이 가능해졌고, 같은 해 현대자동차노조가 처음 설립되었다. 1990년대에는 노동자 권익 보호를 위한 조직화가 본격화되어 1995년 민주노총(민주노동자총연맹)이 출범했고, 기존의 한국노총(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대립 구도가 형성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 금속, 공공, 화학 등 분야별 산별노조가 결성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전국금속노조는 2001년 설립되어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대기업 노조를 산하에 두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계 내부에 분열도 나타났는데, 2011년 노동단체인 ‘국민노총(KLUC)’이 창립되었으나 2014년 한국노총으로 흡수되는 등 우후죽순 연합체들이 생겨났다. 이처럼 대기업 노조의 역사는 ‘결성 → 대규모 파업 → 제도화 → 분화’의 반복으로 얼룩져 왔다.
파업 중독에 빠진 초거대 노조, 한국 산업의 브레이크가 되다
한국의 대기업 노조는 결성 초기부터 파업 카드를 강하게 활용해왔다. 특히 현대차노조는 규모가 큰 만큼 투쟁 강도도 크다. 2022년 임금 협상 과정에서 현대차노조(약 4만6천명)는 조합원의 81.6%가 파업을 결의하며 4년 만에 집단행동을 선언했다 2024년에도 약 4만3천명으로 구성된 현대차노조는 임금과 정년 연장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조합원 90% 가까이가 파업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처럼 한국 대기업 노조는 “파업은 교섭의 정당한 무기”라는 태도로 일관하면서, 임금 인상과 근로 조건 개선이라는 요구 수위를 과감하게 설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 지향성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반복된 파업으로 생산 차질과 수출 지연이 불가피해지고, 기업의 시장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미국의 대표적 노동투쟁 사례인 2019년 UAW의 GM 파업은 한 달여간 계속되어 GM에 약 15억 달러(약 2조원) 손실을 안겼다. 만약 한국에서도 장기 파업이 벌어지면 이와 맞먹는 경제적 타격이 우려된다. 더욱이 한국 노조는 점점 정치적 요구를 표출하며 논란을 키운다. 2024년 말에는 현대차노조를 포함한 금속노조가 대통령의 계엄 선포 철회에 반발하여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며 12월 11일 전면파업까지 예고했다 노동자 생계를 넘어 국가 정치 현안까지 거론하며 강경투쟁을 벌인 것이다.
이외에도 노조의 운영 방식과 내부 문제도 도마에 오른다. 일부에서는 ‘구조화된 권력’으로서 노조 간부의 전횡, 투명성 부족을 비판한다. 한국 노조는 세대 간 갈등이나 글로벌 경쟁 환경을 고려하기보다 고임금 고용 보장에만 골몰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결국 한국 대기업 노조는 ‘강성·대립’을 특징으로 하여, 단기적 권리 쟁취에는 성공하지만 장기적 기업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걸림돌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파업만 외치는 한국 노조, UAW·춘투가 보여주는 합리적 협의의 차이
해외 주요 기업 노조의 구조와 운영 방식을 살펴보면, 한국과는 여러 면에서 대비된다. 미국의 전미자동차노조(UAW)는 자동차 업계 전반을 대표하는 산업별 노동조합이다. 이들은 임금 인상, 의료보험·연금 등 복지 확대, 고용안정 같은 현안에 집중한다. 예컨대 2019년 GM 파업 때 UAW 조합원들은 “더 높은 임금, 고용 보장, 이윤 분배 확대, 의료 혜택 보장” 등을 요구했다. 파업이 길어질수록 기업에는 큰 부담이었지만, UAW는 기업 단위가 아니라 산업 전체를 상대로 협상함으로써 비교적 조직적·체계적으로 투쟁을 벌인다. 또한 미국 노조는 일반적으로 대통령 퇴진 등 정치적 요구보다는 기업 이익을 중심으로 요구사항을 제시한다. 예컨대 2019년 GM 파업은 기업이 노동조건을 개선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순수 노사 갈등이었으며, 정치 이슈와는 거리를 뒀다
반면 일본의 기업별 노조는 태생부터 한국과 크게 다르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기업별 노동조합’ 모델을 유지하며, 노사가 연례 임금협상(춘투: 春闘)을 통해 합의한다. 예를 들어 도요타, 혼다 등 대기업 노조는 매년 봄 경영진과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임금·성과급·복지 등을 조정한다. 대규모 파업은 극히 드물며, 노사 협상 과정에서의 대결보다는 상호 호혜적 협력 관계를 강조한다. 노조는 회사 이윤 일부를 직원들과 공유하는 성과배분과 연공서열을 중시하여, 격렬한 집단행동 대신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는 쪽으로 움직인다. 즉 일본 기업 노조는 “기업의 이익을 나눠 갖되 회사 존립을 해치지 않는” 선(線)에서 움직이며, 안정적인 산업평화를 구축해 왔다.
이처럼 미국과 일본의 노조 운영 사례는 한국 대기업 노조와 대조적이다. 미국 UAW는 연간 단위로 체계적 교섭을 하지만 파업 비용을 감내하며 주로 임금·복지를 요구한다. 일본 기업 노조는 파업 대신 협상으로 승부하며, 임금도 경기 상황에 맞춰 절제한다. 국제 비교 관점에서 보면, 한국 노조는 지나치게 ‘투쟁 우위’에 치중한 반면 미국·일본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타협점을 찾아왔음을 알 수 있다.
한국 대기업 노조, ‘내일 없는 투쟁’으로 국가경제 볼모
그럼에도 한국 대기업 노조의 현실은 변화하지 않고 있다. 대기업 노조는 잦은 파업과 고임금 요구로 ‘회사 경영 방해자’라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실제 미국 사례에서 보듯, 장기간 파업은 기업 생산력뿐 아니라 공급망 전체를 흔든다. 한국의 강성 노조들도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수반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노조 지도부는 노조원 결속만을 위해 강경 노선을 택할 뿐, 회사 경영이나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이는 마치 “내일의 먹거리는 생각하지 않은 채 오늘의 요구만 쟁취하라”는 식이다.
또한 정치·이념적 대립구도를 지나치게 노조 투쟁에 결부시키는 것도 문제다. 노동권 신장을 위해 싸우는 것은 당연하지만, 최근의 한국 노조는 기업을 넘어 사회 전반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예컨대 대통령 탄핵까지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는 모습은, 본래의 노동문제 해결을 넘어 정치적 선동과 다를 바 없다. 노조 스스로 “존재 이유는 노동자 보호”라 하면서도, 실제로는 당장의 자신들의 이익에만 골몰한다면 사회적 지지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요컨대 한국 대기업 노조는 독단적 요구와 대결적 투쟁으로 기업 경쟁력을 저해하고 장기적으로는 노동자 자신도 피해를 보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과 같은 강성 투쟁 방식으로는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더군다나 세계적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노동계가 ‘싸움질만 앞세우는 집단’으로 낙인찍히면 대기업 투자를 위축시켜 청년 일자리조차 줄어들게 될 것이다.
투명·협력 없인 생존도 없다...한국 노조에 내려진 ‘체질 개선 최후통첩
한국 대기업 노조가 당장 변화해야 할 필요성은 명백하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 노조 운영의 투명성 및 민주성 강화
노조 간부 선거와 주요 의사결정 과정을 민주적으로 개선하고, 조합비 사용 내역 등을 공개하여 조합원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노조 전반도 분열을 극복하고 산별체계 구축을 통해 노사 간 협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일본 노조처럼 산별 협약이나 산업별 협의체를 발전시켜 서로 협의하는 틀을 마련해야 한다.
■ 합리적인 임금·복지 협상
임금 인상 요구 시 객관적 지표(생산성, 물가상승률, 경쟁국 임금 수준 등)를 반영해 합의점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조건적 임금 인상 투쟁 대신 성과연동형 임금제나 이익공유제 도입 등 새로운 임금 모델을 실험할 수 있다. 미국 기업들처럼 성과가 뛰어난 해에는 보너스를 받아 공유하고, 불황기에는 유연하게 대응하는 협상 관행을 배울 필요가 있다.
■ 정치 이슈와 거리 두기
노조가 정치적 입장을 표출하더라도 기업과 무관한 사안에서는 중립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동자의 권익 증진이라는 본분에 충실하며, 정부·정당과는 필요할 때만 대화 창구를 열되 집단행동으로까지 확대하지 않아야 한다.
■ 대화와 협력 문화 조성
‘협력적 교섭’으로 전환하여 노사가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협력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예컨대 정기 경영협의회를 확대 운영하거나 노사 임금위원회를 설치하여 분쟁 요인을 사전에 조율하는 것이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도(코드 경영)를 참고하여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를 참여시키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 노동법·제도 개선
정부는 노사 분쟁 해결을 위한 중재·조정 기구를 강화하고, 파업의 불법 요소를 점검하면서도 노동권을 균형 있게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쟁의행위 시 필수유지업무를 지정하여 공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고, 직장폐쇄 등 불합리한 대응에는 처벌 규정을 두는 것도 방법이다.
노조 스스로는 더 이상 ‘과거의 투쟁 패러다임’에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일자리 확대가 곧 노동자의 미래를 담보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미국·일본 등 해외 선진 노사관계의 긍정적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선진국 노조들은 강성 투쟁만이 유일한 방법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제 한국 대기업 노조도 ‘사회적 책임을 진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결국 노조의 진정한 힘은 투쟁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영과 상생을 통해 기업과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능력에 달려 있음을 명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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