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해방일지①] “식물은 존엄하다” 녹색 공존의 첫 장을 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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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해방일지①] “식물은 존엄하다” 녹색 공존의 첫 장을 펼치다

투데이신문 2025-04-28 18: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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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오래전부터 인권을 바탕으로 사회를 발전시켜 왔다. 모든 인간이 천부적인 존엄과 권리를 가지며 이를 보호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은 보편적인 가치로 여겨졌다. 이후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넘어 동물 또한 불필요한 고통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윤리적 인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식물은 어떨까. 인류는 아직까지 식물이 단순한 자원 이상이며 고유한 존엄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식물의 생명을 경시하고 도구적 관점에서 이들을 착취한 결과 인간은 기후위기와 생태계 훼손이라는 결과와 직면하게 됐다. 식물이 소비의 대상이 아닌 존중의 대상이라는 관점이 이제는 필요한 때다.

본보는 ‘식물해방일지’ 시리즈를 통해 국내에서 아직 생소한 개념인 식물 존엄성을 조명하고 식물을 도구로 취급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인간과 식물의 공존을 모색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특히 2023년 국내 최초로 발표된 식물존엄성 선언을 바탕으로 식물에 대한 새로운 윤리적 접근과 그 실천적 의미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기후위기 시대에 지속 가능한 생태적 삶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장을 만들고 정책적 전환의 필요성을 논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반도 국립공원 내소사를 지키는 느티나무.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반도 국립공원 내소사를 지키는 느티나무.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 #나무 톱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때 그 당산나무는 마을의 입구에서 신령한 존재로서 사람들의 삶을 수호했다. 하지만 그 나무는 태풍이 지나간 이후 마을을 위협하는 존재로 변모했다. 마을 사람들이 당산의 줄기와 잎을 잘라 생명을 부스러뜨리는 동안에도 그는 위협이라곤 모르는 것처럼 그저 한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나무들은 예로부터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신성한 지점이자 세계의 중심으로 여겨지는 귀한 존재였다. 한국의 기원이 된 고조선 건국 신화인 단군신화가 시작된 장소에 대해서도 익히 알려진 바 있다. 단군의 아버지인 환웅이 3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하늘에서 내려온 곳은 다름 아닌 ‘나무’였다.

    고조선 당시 신령에게 제사를 드리는 장소에 서 있었던 신단수(神壇樹)는 세월이 흐르며 마을을 수호하는 당산나무의 원형이 된다. 당산나무는 신이 깃들어 마을을 지켜주는 일 외에도 마을 역사를 품은 상징적인 존재로서 주민들의 휴식과 소통의 공간 역할을 해 왔다. 더불어 열매와 그늘, 땔감과 아름다운 경관까지 내어주며 당산나무는 대한민국 밖에도 전 세계적으로 각기 다른 이름을 달고 수많은 마을을 지켜 왔다.

    하지만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인간은 농촌 생활을 떠나 자연과 멀어진 삶을 살게 됐고, 나무의 존재는 점차 잊혀 갔다. 식물은 그렇게 일상에서 쓰기 좋은 도구로 전락했다. 종이부터 젓가락, 연필, 빗 등 생활용품, 건강을 책임지는 각종 식물성 식재료까지. 이에 더해 옷과 섬유, 약재, 고무, 숯도 빠질 수 없다. 나무는 현대인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으면서도 이전과 같은 ‘생명’으로서가 아닌 파편화된 ‘재료’로서 여겨지게 됐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나무가 옛 의미를 잃어버린 채 방치되고 베어지는 동안 새로운 존재들이 인간의 동반자로서 등장했다. 바로 ‘동물’이다. 최근 세계적인 관점에서 반려동물 시장이 급증하면서 동물의 생명과 삶을 인간의 것처럼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인간은 동물에게 가하는 고통을 최소화해야 하며 이들의 행복추구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의 주장인데, 이같이 동물의 권리를 인권의 수준으로 확대해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을 ‘동물권’이라고 한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논의가 활성화돼 최근에는 제주남방큰돌고래의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생태법인 지정법안도 발의된 바 있다.

    더불어 건강한 환경 속에서 생활할 권리인 ‘환경권’ 역시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공적인 문제로 떠오르는 중이지만 정작 모든 생명체의 밑바탕이 되는 식물은 그 존엄과 생명의 귀함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동물과 환경에 대한 보호 논의는 결국 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존엄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 간과되고 있다.

    동물권과 환경권 논의가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출발했다면 이제는 ‘모든 생명체는 인간이 보호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존엄한 존재가 아니냐’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스위스, 에콰도르 등 외국에서는 이미 자연을 법적 인격체로 인정하는 법안을 도입해 기존 환경권 개념을 넘어선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스위스는 1992년 헌법 개정을 통해 세계 최초로 ‘식물의 존엄성’을 명문화한 나라다. 스위스 연방헌법 제120조는 유전공학을 다루며 “생명체의 존엄성은 존중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여기서 말하는 생명체에는 식물도 포함된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스위스 정부는 2008년 ‘식물의 존엄성에 대한 윤리적 고찰’ 보고서를 발표하고 식물을 도덕적 고려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 바 있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인간·식물의 새 관계 맺기...‘존엄 선언’ 등장

    최근 국내에서도 식물의 존엄성에 대한 논의가 첫 발을 디뎠다. 지난 2023년 6월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도시농업과는 ‘식물 존엄성 선언문’을 발표하고 식물을 종과 개체로서 존중하고 배려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했다.

    해당 선언문에 따르면 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고유의 좋음을 지닌 존재로,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선언문은 “인간과 식물의 관계 맺음이 도구적 관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모든 생명체가 연대적 생명이라는 생태적 관점과 지구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유기체라는 진화적 관점에서 인간과 식물은 서로 협력하고 존중하는 생명체로 봐야 한다”고 한다.

    선언문은 ▲제1장 식물의 의미와 가치 ▲제2장 식물 존중의 기본 원칙 ▲제3장 식물 존중의 적용 원칙 ▲제4장 반려식물까지 총 4장으로 이뤄졌다.

    제1장은 식물이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생명의 존엄성을 가진다는 내용을 담는다. 식물은 생태계의 존속과 유지에 대체 불가능한 기능을 하며 인간, 동물과 함께 생태계를 공동으로 유지하는 동반자의 위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또한 1장에 따르면 식물은 경제적·도구적 가치만이 아니라 생태적·윤리적·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제2장 ‘식물 존중의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은 6가지 원칙으로 구성돼 있으며 식물에 대한 인간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제2장 ‘식물 존중의 기본 원칙’의 6가지 원칙. [이미지제작=투데이신문]
    제2장 ‘식물 존중의 기본 원칙’의 6가지 원칙. [이미지제작=투데이신문]

    제2장 하위 원칙인 ‘존중의 원칙’은 식물은 외부 환경을 감각하고 생존에 유리하도록 활용하는 생명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악행 금지의 원칙’은 식물은 정당한 이유 없이 인간에 의해 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하위 원칙 중 하나인 ‘선행의 원칙’에 따르면 인간은 식물이 그 종의 특성에 부합하는 최적의 생명 활동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 또한 ‘비례의 원칙’은 식물의 좋음과 인간·동물의 좋음은 공평하게 고려돼야 한다는 내용을 담는다.

    여기서 ‘좋음’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의한 행복에 관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따온 개념으로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의 좋음이란 행복을 말한다. 이는 단순히 쾌락적 행복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본성에 맞게 가장 좋은 방식으로 살 때 얻는 성취감과 완전한 삶을 의미한다.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종의 정의의 원칙’은 “식물 종은 생태계의 구성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므로 인간과 식물의 관계는 종의 정의에 근거해 정립돼야 하며, 종 차별주의와 종 이기주의 관점은 지양돼야 한다”는 내용을 다룬다. 마찬가지로 ‘서식지 보존의 원칙’은 식물은 서식지를 보존받음으로써 스스로 번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제3장은 ‘식물 존중의 적용 원칙’으로 야생식물이 스스로 번성할 수 있어야 하며, 재배식물은 종의 특성에 부합하는 최적의 생명 활동을 하도록 존중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울러 이에 따르면 인류는 식물 교육의 의미와 윤리 교육의 필요성을 확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 4장 ‘반려식물’에서는 반려식물의 기준과 의무, 혜택과 돌봄의 근거·구체적 방식을 제시한다. 반려식물은 반려자와 정서적 유대관계를 형성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체이며, 인간은 반려식물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이 장의 핵심이다. 이 밖에도 식물의 감각을 근거해 돌봄의 근거와 구체적 방식을 제시한다.

    [이미지제작=투데이신문]
    [이미지제작=투데이신문]

    인간·동물·식물로 이어지는 생명 존중

    식물 존엄성 선언은 식물 역시 동물과 인간처럼 사회적 논의의 영역에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식물 존엄성은 ‘식물이 생명체, 좋음을 지닌 존재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정의를 기본으로 생명 다양성, 비인간 생명체로서의 존엄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주요 쟁점으로는 전정(가지치기), 산림 훼손 등이 있다. 현재로서는 일부 생태운동가와 윤리·철학자, 반려식물 참여자 단체 등이 운동 주체로 꼽힌다. 동물과 달리 쾌고감수능력(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감각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은 식물은 생태중심주의, 생명중심주의를 철학적 기반으로 삼고 있다.

    식물 존엄성은 ‘식물이 생명체, 좋음을 지닌 존재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정의를 기본으로 생명 다양성, 비인간 생명체로서의 존엄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고통을 회피하거나 인간의 건강할 권리를 요구하는 동물권과 환경권과는 다르다. 또 환경권은 생태계 보호와 지속가능성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긴 하지만, 그 주체는 인간 중심이라는 점에서 식물 존엄성과는 거리가 있다.

    존엄성 선언문 연구에 참여한 서울교육대 윤리교육과 변순용 교수는 “일상을 풍요롭게 꾸며주는 식물과 식물을 보호할 수 있는 능동적 존재인 인간의 관계에 대해 고려하는 것이 연구의 출발점이었다”고 되짚었다. 그는 불과 십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가시화되지 않았던 동물권이 현재 법적인 권리를 갖추게 된 변화를 지적하며 식물 존엄의 인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변 교수는 “현대에 이르러 탈인본주의의 관점에서 주창되는 생태윤리와 생명윤리, 인공지능 윤리와 함께 식물윤리 또한 충분히 고려될 가치가 있는 논제”라며 “‘식물 존엄성’이라는 용어를 알리고 상용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이 식물 존엄은 식물에 대한 새로운 윤리적 접근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인류에게 식물을 단순한 자원이나 도구가 아닌 생명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동시에 우리가 식물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고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그렇기에 식물 존엄성 선언은 인간 중심적 사고를 넘어 생명 전체를 존중하는 새로운 윤리 패러다임을 제시한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기후 변화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존망의 기로에 처한 시대다. 생태계를 이루는 모든 생명의 조력자인 식물들이 그 존재 자체로 존엄하게 인간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당 논의가 구체적인 실천으로 발전해야 할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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