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 소재 플라자 호텔에서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5개국 재무장관들이 각국 환율에 관한 합의를 이뤘다. 미국 달러 가치를 절하시키는 대신 여타국 통화를 절상해 미국을 제외한 4개국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하는 내용이다. 당시 일본은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등을 미국에 대량으로 수출하면서 엔저 덕분에 막대한 대미 무역흑자를 내고 있었다. 미국의 압박으로 플라자합의에 서명한 일본은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저금리 정책을 지속하다 거품이 커졌고 결국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장기 불황에 빠져드는 계기가 됐다.
한-미 2+2 통상협의 시작(서울=연합뉴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및 국제통화금융위원회(IMFC)'에 참석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중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함께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재무부에서 열린 '한-미 2+2 통상협의(Trade Consultation)'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 산업부 장관, 최 부총리,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2025.4.24
[기획재정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hkmpooh@yna.co.kr
지난주 진행된 한미 2+2 통상협의에서 관세·비관세 조치, 경제안보, 투자협력과 함께 통화(환율) 정책이 의제로 설정됐다. 환율은 그동안 한미 간 통상협의의 의제로 다뤄지지 않았었는데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양국 재무부가 별도로 환율을 협의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우는 최대 목표가 무역적자·재정적자 감축이고 '동맹들이 통화가치를 의도적으로 절하해 미국을 상대로 무역흑자를 내고 있다'는 주장을 해 온 것을 감안하면 불안한 느낌을 감추기 힘들다. '한국이 원화 약세를 유도해 대미 무역흑자를 키웠다'고 주장하며 압박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8가지 '비관세 부정행위' 중 첫 번째로 '환율 조작'을 꼽았다.
시기적으로 미국 재무부가 내년 2차례 내놓는 환율보고서의 발표 시점이 다가왔다는 점도 부담이다. 작년 하반기 보고서에서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된 한국은 이번에도 대미 무역흑자, 경상수지 흑자, 외환시장 개입 3가지 기준 중 2가지에 해당해 관찰대상국을 벗어나긴 어려울 전망이다. 우리가 미국의 환율 압박에서 벗어난다 해도 미·중 간 환율 전쟁이 벌어지면 그 여파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위안화 절상을 압박하면 글로벌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고 위안화와 동조하는 경향이 있는 원화도 그 영향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다른 3가지 안건도 모두 중요하지만 환율 문제는 과거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금융시장은 물론 경제 전체에 막대한 충격을 줄 만한 메가톤급 이슈이므로 정교하고 정제된 대응이 필요하다. 앞으로 진행될 양국 재무부 간 협의에서 원화 약세에 대한 배경과 원인을 설명하고 의도적 약세 유도나 인위적 시장개입이 없었음을 강력하게 주장해야 한다. 지난해 원화의 약세는 계엄선포 사태 이후 이어진 정치 불안 등의 영향이 컸고 한국 외환 당국은 오히려 원화 약세를 막으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환율은 미국이 우리를 압박하는 카드가 될 수 없다. '플라자합의'나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이 주장하는 '마러라고 합의'는 과거의 방식일 뿐 현재의 글로벌 금융시장과 무역 질서에 통할 수 있는 의제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최근 흔들리는 미국 금융시장을 보면 미국도 '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만을 고집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한미 양국 간 원활한 협의가 진행되길 기대한다.
hoonkim@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