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 부산, 정연두 개인전
(부산=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지난 25일 부산 수영구의 F1964 내에 있는 국제갤러리 부산점. 전시장에 들어서자 느릿한 블루스 음악이 귀에 들어온다. 실제 사람 크기의 스크린에서는 콘트라베이스, 보컬, 색소폰, 오르간, 드럼을 연주하는 이들의 연주 모습이 상영된다. 이들이 내는 소리는 완벽한 화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불협화음은 아닌 상태로 섞이며 전시장을 채운다. 작가 정연두의 개인전 '불가피한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들'의 전시 모습이다.
영상과 사진, 조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며 작업해 온 정연두는 이번 전시에서 블루스 음악을 전시장으로 끌어왔다. 작가는 서울과 미국 워싱턴 등 각각 다른 곳에 있고 배경도 다른 연주자들에게 67bpm(분당 박자수)의 느린 속도와 간단한 코드만을 주고 자유롭게 해석해 연주하도록 한 뒤 마치 협연하듯 연출해 영상 작품 '피치 못할 블루스'를 만들었다.
블루스 음악과 함께 작가가 전시장에 가져온 또 하나의 요소는 '발효'다. 몇 년 전부터 막걸리를 손수 빚으며 발효에 관심을 가져온 작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블루스와 발효를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엮어낸다.
드럼 연주자는 항아리 속 막걸리의 기포가 터지는 박자에 맞춰 드럼을 치고, 색소폰 소리는 발효가 진행되며 부풀어 오르는 밀가루 반죽의 움직임과 함께 울려 퍼진다. 콘트라베이스 연주가가 현을 튕길 때마다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그 앞에 놓인 항아리는 만화경 효과를 이용해 오색찬란한 빛을 뿜어낸다. 퍼커셔니스트는 음악에 맞춰 마치 지휘하듯이 밀가루를 흩뿌린다. 검은 대리석 위에 흩뿌려진 밀가루의 모습은 마치 우주의 은하와 성운처럼 보이는 이미지가 되어 전시장 벽에 걸렸다.
전시장 벽에는 또 메주 사진이 줄줄이 걸렸다. 메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바실러스균이 발효돼 피어오르는 하얀 거품에서 얼굴의 이미지를 포착한 사진 연작 '바실러스 초상'이다.
평범한 사건과 역사적인 사건들을 엮어 영상, 설치, 퍼포먼스, 사진 등으로 연출하는 정연두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도 역사의 이야기를 녹여냈다. '피치 못할 블루스'에 보컬리스트로 참여한 블루스 뮤지션 하헌진이 기타를 치며 부르는 노래는 한국에 정착한 고려인들의 이야기다. 작가는 안산에 사는 고려인 청소년들과 청년들의 사연을 노래 가사로 만들었고 하헌진은 이를 블루스 리듬에 맞춰 노래한다. 고려인들의 사연은 인도네시아 바틱 천에 러시아어로 적혀 벽에 걸렸다. 전시는 7월 20일까지.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에 선정되고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현대차 시리즈로 대형 전시를 열었던 정연두는 다음 달 17일 미국 보스턴 인근 피보디 에식스 박물관의 한국실(유길준 갤러리) 재개장에 맞춰 박물관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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