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미아리텍사스…"여성 자립 대책은 공백"

사진 = 뉴시스

 

서울 강북의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로 불리는 '미아리텍사스'가 재개발로 철거 수순을 밟고 있다. 하지만 수십 년간 이곳에 머물며 생계를 이어온 여성들을 위한 이주·자립 대책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2004년 성매매 특별법 시행 이후에도 명맥을 이어온 미아리 집결지는 올해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성매매 업소 상당수는 철거가 진행 중이며 일대 재개발 사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수십 년간 삶을 이어온 여성들의 '퇴거 이후'의 삶은 계획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계는 이번 집결지 폐쇄가 단순한 도시 정비 사업이 아니라 국가 책임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수십 년간 이 공간이 공권력의 묵인과 단속 사이에서 유지돼 왔고, 그 안에서 살아온 여성들은 이제 생존 기반을 잃게 됐다는 설명이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한국은 명시적으로 성매매 금지국가"라면서 "그럼에도 국가는 기지촌을 비롯한 '특정지역'을 지정해 그 지역 내에서 사실상 성매매를 허용하고 정당화하며 성매매 여성들의 인간적 존엄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구조는 미아리 집결지의 형성과정에서도 드러난다. 1960년대 말 종로3가 집결지 폐쇄 이후 형성된 미아리는 박정희 정권 아래 외화벌이와 관광 진흥 수단으로 활용되며 서울 북부 최대 성매매 집결지로 성장했다.

노랑조아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는 "공권력은 성매매를 단속하면서도 동시에 집결지를 통제·관리하는 이중적 태도로 성매매산업을 묵인·관리해왔다"며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빈곤한 여성들이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몰려들어 이곳에서 삶을 일궜다"고 했다.

하지만 철거가 진행되는 지금 이들을 위한 실질적 이주·자립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건물주나 업주는 보상을 받고 지역을 떠날 준비를 마친 반면, 여성 대부분은 공적 거주 이력이나 소득 증빙이 없어 보상 대상에서 배제됐다. 일부는 일부는 일터를 잃은 뒤 극심한 빈곤에 내몰리거나 다시 성매매 업소로 돌아가기도 하는 악순환에 직면하기도 한다.

성북구와 서울시는 7년 전 여성단체와 손잡고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매매 예방 및 성매매 피해자 등의 자활 지원 조례'(2017)를 제정했다. 조례는 성매매를 그만둔 여성이 일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 생계비·주거 이전 비용·직업훈련비 등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성북구는 해당 조례가 재개발에 따른 주거 보상과는 무관하며, 성매매 중단 이후 자활을 위한 지원 조례라는 입장이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여성가족부 국비와 서울시 시비는 있었지만, 성북구 자체 예산은 편성된 적 없다"며 "현장 시위자들의 요구는 재개발로 인한 보상에 가까워 조례 취지와는 다르다"고 밝혔다.

김민 대표는 2022년 대법원의 미군 '위안부' 판결을 언급하며 "국가가 위법한 상황을 방치해 권리가 침해된 피해자들에게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이 있었다"며 "성매매 피해 여성들에 대한 사과와 함께 권리 회복을 위한 실질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여성단체들은 미아리 여성들의 이주 지원 요구가 단순한 복지 혜택이 아니라, 과거 국가의 방조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강조한다. 실효성 없는 조례가 아닌 예산이 수반된 구체적인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랑조아 활동가는 "잠자고 있는 지원 조례가 작동하도록 지원 예산을 편성하고, 자립·생계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