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N 르포] 쉼은 짧고 쉴 곳은 부족했다... 이동노동자 쉼터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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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 르포] 쉼은 짧고 쉴 곳은 부족했다... 이동노동자 쉼터 가보니

투데이신문 2025-04-25 09:19:4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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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중구 북창동의 휴서울이동노동자 북창쉼터.ⓒ투데이신문
서울특별시 중구 북창동의 휴서울이동노동자 북창쉼터.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민수 기자】요란한 봄비가 내리던 지난 22일 서울 곳곳엔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빗줄기를 뚫고 달리던 이들은 젖은 우비와 장갑, 장화를 신은 채 잠시 엔진을 멈췄다. 서울 북창동의 한 건물 2층 우비를 털며 계단을 오른 이들은 조용히 헬멧을 벗고 쉼터 안으로 들어섰다.

2018년 설립된 휴서울이동노동자 북창쉼터 내부는 약 50여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30평 규모의 공간으로 피로를 풀 수 있는 안마의자, 멀티 충전기 콘센트, 동료들과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테이블 등 다양한 편의 시설들이 마련돼 있다. 이동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휴대폰을 충전하는 등 실용적인 시설들이 곳곳에 있어 그들의 피로를 풀어주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쉼터 안엔 각자의 방식으로 숨을 고르는 이들이 있었다. 한쪽에선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짧은 잠에 빠진 사람이 있었고 안마의자에서 굳은 어깨를 풀며 피로를 달래는 모습도 보였다. 테이블 너머로 동료들과 따뜻한 차를 나누며 콜 정보를 주고받는 대화가 오갔다. 밖의 소란스러움과 달리 이곳엔 잠시 고요한 휴식이 흐르고 있었다.

지난 22일 오후 휴서울이동노동자 북창쉼터에서 이동노동자들이 쉬고 있다.ⓒ투데이신문
지난 22일 오후 휴서울이동노동자 북창쉼터에서 이동노동자들이 쉬고 있는 모습. ⓒ투데이신문

쉼터에 들어섰을 때 구석 자리에는 이미 한 남성이 앉아 있었다. 젖은 우비를 옷걸이에 걸고 숨을 고르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콜이 온 듯 다시 우비를 챙겨 입더니 말없이 자리를 떴다. 약 30분 후 익숙한 발걸음이 다시 쉼터 문을 열었다. 다시 돌아온 그는 물기 어린 우비를 털고 쉼터에 들어섰다.

“저는 매일 북창쉼터에 와요. 쉼터 직원들보다 많이 왔을걸요”

퀵서비스를 마치고 돌아온 현씨(60)의 젖은 우비. 빗속을 달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투데이신문
퀵서비스를 마치고 돌아온 현씨(60세)의 젖은 우비. 빗속을 달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투데이신문

퀵서비스 일을 하는 현모(60·남)씨는 북창쉼터의 터줏대감이었다. 하루 평균 13건, 10만 원 남짓을 벌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는 그의 일상 속에서 이곳은 잠시 몸과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현씨는 익숙한 손길로 따뜻한 차를 탔다.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지만 그의 시선은 곧바로 테이블 위 3대의 휴대폰으로 향했다. 서로 다른 플랫폼 앱이 켜진 휴대폰 화면을 번갈아 확인하며 그는 또다시 다음 콜을 기다리고 있었다. 쉼터에 앉아있는 순간조차도 그의 업무는 멈추지 않았다.

현씨(60)가 북창쉼터에서 3대의 휴대폰을 번갈아보며 콜을 기다리고 있다. ⓒ투데이신문
현씨가 북창쉼터에서 3대의 휴대폰을 번갈아보며 콜을 기다리고 있다. ⓒ투데이신문

서울시가 2016년부터 운영하는 ‘휴(休) 이동노동자 쉼터’는 빗속을 달리던 이동노동자들이 잠시 숨을 고르는 공간이다. 이동노동자의 건강권 보호와 휴식 지원을 위해 총 5곳의 쉼터가 운영돼왔다. 쉼터에는 따뜻한 차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휴게 공간은 물론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와 무선 충전기, 굳은 몸을 풀 수 있는 안마의자까지 마련돼 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은평 셔틀쉼터가 운영을 종료하면서 현재는 4곳만 남았다. 이 중 북창쉼터 역시 폐쇄 위기를 겪으며 한때 문을 닫을 뻔했으나 이동노동자들의 반발로 재검토 끝에 운영이 연장됐다. 쉼터를 찾는 노동자들에게 이곳은 단순한 휴식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폐쇄한다고 했을 때 정말 힘들었어요. 여기 없으면 안 돼요. 여름엔 에어컨 바람 쐬러 오는 게 얼마나 큰지 몰라요. 이런 곳이 없으면 진짜 막막하죠.” 현씨는 북창쉼터의 의미를 단호하게 말했다. 

배달 중 들른 쉼터에서 따뜻한 차 한 잔으로 숨을 고르는 현씨
배달 중 들른 쉼터에서 따뜻한 차 한 잔으로 숨을 고르는 현씨 ⓒ투데이신문

북창쉼터 양용민 운영간사는 “북창쉼터는 하루 평균 70명, 혹한기나 혹서기에는 100명 가까운 이동노동자들이 이용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서울시는 이용률을 이유로 운영 중단을 검토했다. 이에 이용자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폐쇄 계획이 보류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시가 ‘찾아가는 쉼터’나 지하철 역사 내 간이쉼터를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택배·퀵서비스·음식배달 노동자들은 이용할 일이 거의 없다”며 “이런 방식으로는 이동노동자들의 실질적인 휴식권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아쉬움을 보였다.

또한 과거 북창쉼터에서는 이동노동자 대상으로 법률·세무상담 등 무료 서비스가 진행됐으나 예산 감축 등의 이유로 종료됐다. 이동노동자들은 일을 하다 보면 접촉사고와 같은 법적 문제나 금융 문제로 인한 신용불량 위험에 자주 직면해 이러한 상담이 필수적이었다. 양 선임 간사는 “이제는 그런 기본적인 상담조차 사라졌다”며 “과거에 해왔던 최소한의 서비스라도 다시 복원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소망했다.

쉼터에서 숨을 고른 김씨(45세)가 빗속을 뚫고 다시 배달 업무에 나선다 ⓒ투데이신문
쉼터에서 숨을 고른 김씨(45세)가 빗속을 뚫고 다시 배달 업무에 나선다. ⓒ투데이신문

쉼터 아래 오토바이 주차장에선 빗물이 고인 바닥 위로 퀵서비스 배달기사 김모(45·남)씨가 발걸음을 옮겼다. 헬멧을 쓴 그는 익숙하게 장갑을 끼고 젖은 우비를 정리하며 오토바이에 올랐다. 잠시 전까지 쉼터 안에서 숨을 돌리던 김씨는 다시 빗속으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기 없으면 진짜 막막하죠. 밖에서 콜 기다리면 겨울엔 얼어 죽고, 여름엔 더워 죽어요.” 김씨가 핸드폰 화면을 확인하며 덧붙였다. “이런 곳이 없으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일 못해요” 쉼터의 필요성을 남기고 그는 빗속으로 사라졌다.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동의 영등포구이동노동자쉼. ⓒ투데이신문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동의 영등포구이동노동자쉼터. ⓒ투데이신문

서울시가 운영하는 쉼터 외에도 현재 13개 자치구에서 이동노동자들을 위한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영등포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 1층에 자리한 영등포구 이동노동자 쉼터다. 이곳은 2023년 10월에 설치된 쉼터로 안마의자, 휴대폰 충전기 등의 시설은 물론 생수와 커피가 제공돼 이동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북창 쉼터와 비교하여 영등포구 쉼터는 상대적으로 최근에 마련됨에 따라 보다 현대적인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이곳은 혈압측정기, 커피머신, 헬멧 건조기 등 추가적인 편의시설이 있어 단순한 휴식 이상의 기능을 했다. 또한 자치구 차원에서 산업안전보건 교육과 무료 노동상담 등 실질적인 노동자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이동노동자들의 권리 보호에 기여하고 있었다.

영등포구 쉼터도 많은 이동노동자들의 휴식처가 됐다. 비를 뚫고 온 배달기사는 빗물을 털 새도 없이 커피머신으로 향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이 내려오기도 전에 헬멧을 챙긴 그는 뜨거운 컵을 손에 쥐고 빠르게 출입문을 나섰다.

평소에도 하루 100병 넘게 생수가 소비되고 여름철엔 200병 이상 나갈 때도 있을 정도로 무더위 속 노동자들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공간이다. 겨울에는 핫팩과 발팩이 비치돼 있어 추운 날씨 속에서 잠시나마 몸을 녹일 수 있다. 이외에도 오토바이 무상 점검 서비스와 안전교육 등 실질적인 지원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쉼터 냉장고에 채워진 생수. 하루 평균 100병 이상이 소비된다. ⓒ투데이신문
쉼터 냉장고에 채워진 생수. 하루 평균 100병 이상이 소비된다. ⓒ투데이신문

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잘 갖춰진 이 공간도 한정된 예산으로 운영은 결코 여유롭지 않다. 영등포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 최성은 사무국장은 “생수나 커피 같은 기본 물품도 민간 후원 등에 의존해 유지하고 있다”며 “인건비 역시 부족하고 전담 인력이 없는 상황 속에서 담당 인력의 고용이 안정돼야 쉼터 운영도 안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토로했다.

빗속을 달리던 이동노동자들은 잠시 숨을 고를 공간을 찾았지만 그 공간조차 언제까지 지켜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잠깐의 휴식이 당연한 권리가 되기 위해선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잠시 숨 고를 곳’마저 잃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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