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아서 곳간 채운다"...기업들 ‘리밸런싱’ 칼바람

LG그룹 사옥./LG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글로벌 경기 침체와 대내외 불확실성의 장기화가 맞물리면서 대기업들이 생존과 성장을 위해 본격적으로 사업구조 재편에 돌입했다. ‘선택과 집중’ 전략에 맞춰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고 유망사업에 투자하겠다는 방침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3년 전 진출했던 전기차 충전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이 길어지고 가격 중심 경쟁 구도 심화 등에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LG전자는 한때 2022년 GS에너지·GS네오텍과 공동으로 전기차 충전기 전문업체 하이비차저의 지분 100%를 인수하고, 이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로 사업을 확장했으나 실적이 기대에 못미치자 과감히 정리한 것이다. 하이비차저는 지난해 매출 106억원, 영업손실 72억원으로 2년 연속 적자를 냈다.

전기차 시장은 2023년 이후 성장세가 둔화되며 ‘캐즘’에 빠졌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함께 전기차 수요 증가 속도가 예상보다 더뎌지면서 충전 인프라 시장도 타격을 입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미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취임 이후 전기차 충전 인프라에 대한 보조금 지원까지 중단되면서 해외 시장에도 제동이 걸렸다.

LG전자 관계자는 “이번 EVC 사업 종료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전략적 리밸런싱 차원에서 종료하게 됐다”며 “EVC 사업을 담당하던 ES사업본부는 HVAC 사업에 집중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LG그룹의 계열사 사업 개편은 올해 들어 빨라지는 분위기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올해 첫 사장단 회의에서 제시한 ‘선택과 집중’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최근 계열사 별로 부진한 사업을 철수하거나 매각하는 등 재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9월 그룹내 주요 전자계열사인 LG디스플레이는 중국 광저우 액정표시장치(LCD) 공장을 중국 차이나스타(CSOT)에 매각했으며 LG화학은 분리막 사업에서 생산직 인력을 재배치하고 미국 진출 계획도 철회했다.

업계에서는 구 회장이 위기 극복 방안으로 제시한 사업 재편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SK그룹은 최근 몇 년간 대대적인 리밸런싱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을 통해 에너지 사업을 통합했으며, SK렌터카를 8200억원에, SK스페셜티 지분 85%를 2조6300억원에 각각 매각했다. 또한 SK에코플랜트는 폐플라스틱 기업 ‘DY인더스·폴리머’를 매각했으며, 최근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인 SK실트론 경영권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몸값이 5조 원대로 추산되는 SK실트론 매각이 성사될 경우 그룹 전반의 재무구조 개선 효과가 기대된다.

SK실트론 매각이 성사될 경우 지난해 말 84조원이던 그룹 순차입금은 올해 3분기 70조원대로 감소하면서 부채비율 개선에도 상당한 효과가 예상된다. 계열사 수도 10% 이상 줄어들 전망이다. 확보한 현금은 AI, 반도체 등 미래 성장동력에 재투자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주요 기업들의 리밸런싱은 단순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생존과 도약을 위한 전략적 진화”라며 “사업 개선을 통해 재무 건전성을 높이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해 국내 산업계의 ‘뉴노멀’로 자리잡을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