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 스팸을 흰밥 위에 얹으면 따로 반찬이 필요 없다. 짭조름한 맛에 기름기 살짝 돈 겉면이 어우러지며 밥을 부른다. 자취방 부엌에서도, 가족 식탁 위에서도 스팸은 빠지지 않는다. 김치볶음밥에 넣으면 풍미가 올라가고, 찌개에 넣으면 국물맛이 한층 깊어진다. 바쁠 때, 요리할 기운이 없을 때, 냉장고 문을 열고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이 통조림 햄이다.
이처럼 스팸은 오랜 시간 세대를 거쳐 식탁 위를 지켜왔다. 물론 처음부터 환영받았던 건 아니다. 군용 식량으로 시작해 부족한 시절을 지나며 식재료로 받아들여졌고, 지금은 명절 선물세트의 대표 품목으로까지 자리 잡았다. 한 세기를 넘긴 스팸의 존재는 그 자체로 식생활의 변화를 보여주는 흔적이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고열량 식량
스팸의 시작은 1936년 미국이다. 호멜 식품 창업자의 아들이 만든 이 통조림 햄은, 어깻살과 잡육을 갈아 압축한 형태다. 발색제와 방부제를 첨가해 상온 보관이 가능했고, 1937년 ‘스팸’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스팸은 미군 전투식량으로 자리 잡는다. 고열량 단백질 식품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미국이 제공한 구호물자 덕에 영국에서는 ‘스팸랜드’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스팸 소비가 많았다. 소련 병사들도 ‘루스벨트 소시지’라 불렀다. 단백질을 간편하게 섭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시 상황에 꼭 맞는 식품이었다. 하와이에서는 스팸이 밥 위에 올라가 김으로 감싸지는 ‘무스비’라는 형태로 발전했다.
한국 식탁에서 자리 잡기까지
한국전쟁 후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스팸이 민간에 퍼졌다.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조리도 간편했던 스팸은 구세주처럼 여겨졌다. 이후 1987년, 국내 업체가 호멜과 정식 계약을 맺고 자체 가공 생산을 시작하면서 대중화됐다.
2023년 유통업계에 따르면, 스팸은 출시 첫해에만 500t 이상 판매되며 시장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얻었다. 반찬 없이도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 간편한 조리 방식과 긴 보존 기간이 주요 소비 요인으로 작용했다.
국내 스팸 매출은 2018년 4190억 원에서 2019년 4200억 원, 2020년 4500억 원, 2021년 4900억 원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명절 선물세트 시장에서는 수년간 1위를 차지하며 ‘국민 선물세트’로 자리 잡았다.
쌀밥에 잘 어울리는 짭조름한 맛, 반찬 없이도 한 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었다. 찌개, 볶음밥, 주먹밥 등 어디에 넣어도 조화를 이루는 식재료로 자리 잡았다. 스팸의 간편함은 바쁜 일상과 잘 맞았고, 명절에는 선물세트로도 등장했다. 실제로 판매량 절반 이상이 명절에 집중된다.
영국 BBC는 “스팸이 한국에서 고급 음식으로 여겨진다”며 추석 인기 선물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고소함 뒤에 숨은 염분과 지방
편리함과 친숙함 뒤에는 우려도 있다. 스팸은 돼지고기 어깻살과 넓적다리살, 감자 전분, 설탕, 아질산나트륨 등으로 만들어진다. 아질산나트륨은 보존성을 높이는 첨가물이지만, 과다 섭취 시 간과 신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아질산나트륨 섭취량은 일일 허용량의 6.8% 수준이다.
나트륨 함량도 높다. 조리 전 끓는 물에 살짝 데치거나 찬물에 헹구면 염분을 일부 줄일 수 있다. 스팸을 구울 때 나오는 기름도 함께 줄일 수 있어 건강을 고려한다면 꼭 필요한 과정이다.
스팸의 단백질 함량은 높지만 질은 떨어진다. 필수아미노산이 부족해 콩이나 쌀 같은 식품과 함께 먹는 것이 좋다. 브로콜리, 양파, 당근 등 채소를 곁들이면 부족한 섬유질까지 보완된다. 스팸을 기름에 굽는 대신 삶거나 찌는 방식도 추천된다.
개봉 전에는 실온 보관이 가능하지만, 개봉 후에는 반드시 냉장 보관하고 하루 안에 소비해야 한다. 유통기한과 별도로 개봉 후 보관 상태가 중요하다.
한편, 스팸은 시대에 따라 모습과 쓰임이 달라졌다. 군용 식량에서 출발해 가정식, 선물용으로 진화했다. 건강에 대한 경계가 높아지면서 염분이나 지방에 대한 걱정도 커졌지만, 여전히 쉽게 접할 수 있는 식재료로 남아 있다. 조리 방법을 바꾸고, 채소와 함께 먹는 방식으로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우리 식탁에 자리 잡은 이유는 단순한 편리함만은 아니다. 한 세기를 넘겨 온 스팸의 역사는 음식의 문화적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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