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황수민 기자] 소비 심리가 얼어붙은 데다 이상기후까지 겹치면서 패션업계가 좀처럼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인 시즌 전략이 한계를 드러내자 업계는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날씨 탄력형’으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24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2월 국내 주요 온라인 유통업체 매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6.7% 늘었지만 패션·의류(-9.7%), 스포츠(-9.8%) 부문의 부진은 지속됐다. 오프라인 유통업체 매출에서도 패션·잡화(-9.4%)는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실제 백화점 매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2~3월 롯데백화점의 패션 매출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고 신세계(0.9%), 현대백화점(0.2%)도 소폭 증가에 그쳤다.
남·여 패션, 유아·아동, 스포츠, 아웃도어 등 대부분 상품군이 고전했으며 예년 6~7%대 성장률과 비교하면 사실상 역성장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때 이른 더위 탓에 매출 증가율이 2% 안팎에 머물렀던 지난해보다도 성장세가 크게 둔화됐다.
업계는 실적 부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날씨를 꼽는다. 매년 2~3월은 봄 간절기 상품 수요가 집중되는 시기로 보통 2월부터 판매가 시작돼 3월에 매출이 정점을 찍는다.
올해는 회복되지 않는 소비심리에 더해 추위와 변덕스러운 기온 변화까지 겹쳤다. 올해 2월 평균 기온은 –0.5℃로 최근 10년 중 가장 낮았다. 지난해(4.1℃)와 비교하면 5℃ 가까이 뚝 떨어진 것이다. 지난달에도 중순까지 눈이 내리는 날이 있었고 갑작스러운 기온 하강 현상이 나타났다.
백화점의 패션 매출 비중은 전체의 20∼30%를 차지한다. 올해 2∼3월 저조한 패션 매출은 백화점과 패션업체 1분기 실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달 말 1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삼성물산 패션부문, LF, 신세계인터내셔날,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 한섬 등 주요 기업은 전년보다 수익성이 악화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이상기후가 단기적인 변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기후 리스크가 시즌 전략 전반을 흔들자 기업들은 기존 4계절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 보다 유연한 운영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먼저 현대백화점은 주요 패션 협력사 15곳과 자사 패션 바이어로 구성된 ‘기후변화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이다. 여름이 예년보다 길어지고 불볕더위가 잦아진 점을 고려해 간절기 상품 비중 축소, 여름 상품 물량 확대, 신상품 출시 시점 조정 등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 역시 계절 구분에 기반한 기존 상품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기온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여름 상품 비중을 늘리고 기능성과 실용성을 겸비한 여름 소재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변덕스러운 날씨에 대응할 수 있는 디자인과 레이어링(겹쳐입기) 활용도가 높은 상품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LF는 길어진 여름을 대비해 기존 2월에서 1월 중순으로 봄·여름(SS) 시즌 상품 출시 시점을 앞당기고 2월 말부터 여름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고객 반응을 분석해 물량을 추가 생산하는 ‘반응 생산 프로세스’도 확대하고 있다. LF가 수입 판매하는 이자벨마랑은 일부 시즌 물량을 남겨두고 발주하는 전략을 활용 중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생산과 재고 운영에 유연성을 높이고 있다. 고객 반응에 따라 소량 리오더(재발주)를 진행하고 온라인 전용 기획 상품 비중을 늘려 상황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다. 올해도 이상 고온현상에 따라 주요 브랜드의 봄·여름 제품 출시 시점을 지난해보다 4주가량 앞당겼다.
한섬은 특정 계절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기온 조건에서도 착용할 수 있는 니트와 ‘셔켓’(셔츠와 재킷의 합성어), 가디건 등을 선보이고 있다. 시즌별 출시 시점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한편 초기 반응을 기반으로 생산량을 결정하는 반응 생산 방식도 강화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 침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수익성이 높은 가을·겨울 시즌 제품도 이상기후로 매출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며 “시즌별 전략을 유연하게 조정하며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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