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복지 선진국으로 불린다. 공공 의료, 노인 돌봄, 사회보장제도. 시스템은 완벽에 가깝다. 한데 시스템의 틈바구니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존재가 있다. 결혼했던 여성, 자녀를 키웠던 여성, 가족을 돌봤던 여성. 텐트 안에서 혼자 밥을 짓는 신세로 무너졌다.
숫자는 많지 않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통계는 말하지 않는 여성 노숙인은 많았다. 후생노동성은 거리의 여성 노숙인은 5%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수치는 일본 정부가 정의한 ‘노숙’의 범위에 갇혔다.
여성들은 거리에 나서지 않는다. 나설 수 없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숨었다. 패스트푸드점, 텐트, 거리 등 ‘보이지 않는 장소’에 숨었다. 결혼은 안전망이 아니었다.
도쿄와 오사카 현장에서 마루야마 유미 교토대 교수는 9년 간 33명의 여성 노숙인을 만났다. 그 중 90% 이상이 결혼 경험자였다.
절반 이상은 재혼 경험자. 남성 노숙인 절반 이상이 미혼인 것과는 전혀 다른 구조다. 마루야마 교수는 “남편이 실직해 함께 거리로 나온 경우와 남편의 폭력, 남편의 죽음 이후 무너진 생계 문제가 노숙인이 된 경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했다.
결혼은 보호막이 아니라 구조적 종속이었다. 그리고 언제든 파기 가능한 ‘생활 계약’이었다. 보편적 복지는 여성에겐 예외였다고 마루야마 교수는 말했다.
중졸 이하 학력. 청소, 요식, 유흥업소 중심의 파편적 경력. 고용보험 미가입, 연금 사각. 대부분이 ‘노동은 했지만 제도에는 포함되지 않은’ 인생이었다.
한 여성은 26년간 일했지만 실업급여도 연금도 없었다. 퇴사 후 청소 아르바이트를 병행했지만 월세도 못 냈다. 결국 지인의 집을 전전하다 거리로 나왔다.
복지시설은 존재한다. 그러나 머물 수는 없었다. 가족 복귀 권유, 공동생활 갈등, 정체성 혼란.많은 이들이 다시 거리로 돌아왔다. 일관되지 않은 결정, 반복되는 이동. 여성 노숙인의 삶은 직선이 아니라 원이었다.
폭력 남편에게서 도망쳤던 한 여성은 결국 다시 그 남자의 곁으로 갔다. 그녀는 “나를 받아주는 사람은 그 사람뿐이었다”고 회상했다.
빈곤은 집 안에도 있다 일본의 빈곤 측정은 ‘세대 단위’다. 한 여성은 ‘집에 거주 중’이므로 빈곤층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그러나 집을 나서는 순간 그녀는 즉시 노숙인이 된다.
가사, 육아, 간병 등 무급노동에 시간을 투입한 여성들은 노동시장과 단절되고 제도적 보장의 바깥에 서게 된다. 결국 ‘보이지 않는 빈곤’, ‘숫자에 잡히지 않는 삶’이 된다.
마루야마 교수 "정리된 결론은 없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그녀들은 노숙을 ‘선택’한 게 아니다. 선택지가 없었던 것이다. 제도는 공평하지 않았다. 결혼했던 여자들은 시스템 밖으로 쫓겨났다. 복지국가라는 간판 아래 조용히 퇴장당했다"고 했다.
도쿄·오사카·교토=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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