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박정우 기자]글로벌 K-컬처가 서울에서만 꽃피는 건 아니다. 지방 중소도시, 그것도 경남 내륙의 한적한 도시 밀양에서 문화 인프라의 새로운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바로 밀양시립박물관 이야기다.
2022년 9월, 전시·시설 전면 리모델링을 거쳐 재개관한 이 박물관은 불과 2년 만에 연간 방문객 수를 2배 이상 끌어올리며 ‘지방 소도시 문화공간의 모델’로 부상하고 있다. 단순히 박물관을 고쳤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족 중심 체험형 박물관’이라는 정체성과 방향성이 전환점이었다.
◇숫자가 말해주는 변화...“2022년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밀양시립박물관은 2011년 개관 이후 오랫동안 지역의 작은 전시공간 정도로 인식돼 왔다. 연간 관람객도 2만~4만 명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2022년 9월, 문화체육관광부 국비를 포함한 70억 원 규모의 대대적인 리뉴얼 사업이 완료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2023년 관람객 8만806명, 2024년 8만333명, 단 2년 만에 2배가 넘는 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흥미로운 건 관람객의 90%가 타지에서 온 외지인이라는 점이다. 가족 단위 방문객이 대부분이며, 주말과 방학 시즌엔 수도권 차량이 주차장을 가득 메운다. 박물관이 단순한 문화시설을 넘어 도시를 찾게 만드는 동력으로 작용하기 시작한 셈이다.
◇핵심은 ‘어린이박물관’...놀이와 교육, 역사와 미래를 잇다
이번 리뉴얼의 핵심 키워드는 ‘체험’과 ‘교육’이다. 그 상징이 바로 어린이박물관. 단순히 전시물을 보는 공간이 아니라, 놀이와 학습, 창의 체험이 입체적으로 연결된 복합 콘텐츠 공간이다.
어린이박물관 내부엔 전통놀이 체험존, 역사 스토리 체험관, 문화유산 퍼즐존, 실감형 콘텐츠 영상관 등 아이들이 몸으로 체험하며 배우는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특히 5곳의 실감 콘텐츠 체험존은 밀양의 역사, 인물, 자연을 AR·VR 등 실감기술로 구현, 교육적 재미를 동시에 잡았다.
이러한 차별성 덕분에 현재까지 전국 20여 개 지자체·박물관 관계자들이 벤치마킹을 위해 방문할 정도로 ‘컨텐츠 기반 박물관’의 성공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전시 그 이상”...시민 삶에 녹아드는 박물관
전시는 시작일 뿐이다. 밀양시립박물관은 현재 지역민을 위한 문화교육 플랫폼으로도 자리매김 중이다.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맞춰 가족 참여형 체험수업이 열린다. “전통 놀이-박물관은 내 맘대로 놀이터”, “전통 인쇄 체험”, “화석 공룡 전시” 등 체험 중심 프로그램은 수강신청 시작과 동시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다.
시민 대상 ‘박물관 대학’ 인문학 강좌와 도슨트 양성 프로그램은 단순 수강이 아니라 ‘문화활동 인재 양성’ 기능까지 수행한다. “단순히 구경하러 오는 공간이 아니라 배우러 오는 공간”이라는 지역민 반응이 많다.
◇진로교육과도 연결...‘문화+교육+지역성’ 삼박자 실험
2025년부터는 교육적 기능이 더 강화될 전망이다. 지난 4월 개원한 경남진로교육원과 협력해, 박물관 진로 체험교육 프로그램이 본격 가동됐기 때문이다.
박물관 해설사(도슨트), 전통문화 체험강사, 실감 콘텐츠 제작 등 문화 관련 직업군에 대한 체험과 강의가 포함된 진로교육 프로그램은 현재 경남 초·중·고 학생 약 2만 명 참여가 예정돼 있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한 체험학습이 아니다. ‘지역 기반 직업교육 콘텐츠’를 공공문화시설이 제공한다는 점에서 문화예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방 문화공간의 진화, 밀양은 왜 특별한가
문화체육관광부는 전국 공립박물관의 운영 역량을 2년마다 평가한다. 밀양시립박물관은 2017년부터 3회 연속 ‘우수박물관’으로 인증받은 5곳 중 하나다. 경남의 41개 공립박물관 가운데 이름을 올린 곳은 극소수다.
지방 소도시의 박물관이 일으킨 작지만 뚜렷한 변화. 그것은 “지방이기에 더 가능했던 실험”일지도 모른다.
정영선 밀양시 문화예술과장은 말한다. “우리에겐 대규모 테마파크나 유명 전시관은 없지만, 지역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아이들과 가족이 체험하며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밀양시립박물관이 보여주는 건, 지방의 박물관도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가능성을 밀양이 증명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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