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은 길고 말은 없다… 서울 상암에서 맛본 평양냉면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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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은 길고 말은 없다… 서울 상암에서 맛본 평양냉면 한 그릇

위키푸디 2025-04-23 21:45:43 신고

3줄요약
평양냉면 자료사진. / 위키푸디
평양냉면 자료사진. / 위키푸디

냉면의 계절이다. 햇살은 강해졌고, 거리에는 반소매가 늘었다. 낮 기온은 20도를 훌쩍 넘었다. 이맘때쯤이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음식이 있다. 냉면이다.

뜨거운 햇볕을 걷고 난 뒤, 찬 육수 한 모금이면 온몸이 식는다. 면발은 차갑고 탄력 있다. 그릇은 묵묵하다. 국물은 맑고, 말이 필요 없다.

서울 상암동. 방송국과 오피스가 밀집한 이곳에도 줄이 생긴다. 냉면집 이름은 ‘부벽루’. 평양의 정자를 그대로 따왔다. 줄 선 사람들의 기대는 한 그릇의 냉면으로 이어진다.

상암 DMC ‘부벽루’에서 만난 평양냉면

부벽루 평양냉면 자료사진. / 위키푸디
부벽루 평양냉면 자료사진. / 위키푸디
부벽루 평양냉면 자료사진. / 위키푸디
부벽루 평양냉면 자료사진. / 위키푸디
부벽루 평양냉면 자료사진. / 위키푸디
부벽루 평양냉면 자료사진. / 위키푸디

물냉면 육수는 진하다. 한우와 채소로 우려낸 국물엔 군더더기가 없다. 간은 절제돼 있다. 한 모금 들이키면 육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면은 100% 순메밀. 거칠고 툭 끊긴다. 천천히 씹을수록 고소함이 남는다. 식초나 겨자를 넣지 않아도 충분하다. 국물과 면만으로 조화를 이룬다.

부벽루 깍두기 자료사진. / 위키푸디
부벽루 깍두기 자료사진. / 위키푸디
부벽루 물김치 자료사진. / 위키푸디
부벽루 물김치 자료사진. / 위키푸디

비빔냉면은 과일과 채소로 만든 양념장이 핵심이다. 단맛이 먼저 온다. 양념이 면에 자연스럽게 배어든다.

들기름면은 고명 없이 들기름만 둘렀다. 향이 짙다. 기름기 많지 않고, 느끼하지 않다. 입안에서 오래 남는다.

냉면 외에도 메뉴는 다양하다. 한우만둣국, 어복쟁반, 냉제육, 가자미 식혜까지 준비돼 있다. 특히 어복쟁반은 넉넉하고 뜨겁다. 소주 한 잔과 잘 어울린다.

평양냉면, 비빔냉면, 들기름면 모두 1만4000원. 한우만둣국도 같다. 어복쟁반은 인원수에 따라 조절된다. 점심과 저녁 모두 대기 줄이 이어진다.

부벽루 평양냉면 자료사진. / 위키푸디
부벽루 평양냉면 자료사진. / 위키푸디

테이블 사이엔 말이 없다. 사람들은 음식에 집중한다. 조용히 식사를 마치고 일어난다. 국물은 남기지 않는다.

이렇게 조용한 한 그릇을 마주하고 나면 문득 궁금해진다. 이 국수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전쟁 이후 서울에 뿌리내린 평양냉면

부벽루 평양냉면 자료사진. / 위키푸디
부벽루 평양냉면 자료사진. / 위키푸디

냉면은 원래 겨울 음식이었다. 뜨거운 온돌방에서 차가운 국수를 먹었다. 평양 사람들은 술 한 잔 마신 뒤 냉면을 해장처럼 먹었다. 선주후면, 먼저 술 그다음 면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고려 중기부터 냉면이 등장한다. 조선 시대 숙종과 고종도 즐겨 먹었다. 1849년 '동국세시기'에는 관서 지방, 지금의 평양 냉면이 가장 뛰어나다고 적혀 있다.

18세기, 냉면은 배달 음식이었다. 과거시험을 본 뒤 냉면을 시켜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19세기에는 순조가 달을 보며 냉면을 사오게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1930년대 자전거 배달이 유행하면서 냉면 배달은 전성기를 맞는다. 경성의 여름, 관공서와 회사에는 냉면 주문 전화가 쉴 새 없었다.

6.25 전쟁 이후 실향민들이 서울로 내려오며 평양냉면은 자리를 잡았다. 을밀대, 필동면옥, 부벽루처럼 정자 이름을 내건 간판들이 등장했다. 음식이 아니라 기억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그 기억은 다른 이름으로, 다른 방식으로 다시 나타났다. 냉면은 단지 고향을 떠올리는 한 끼를 넘어 일상의 음식이 됐다. 여름에만 찾던 음식은 사계절 내내 이어진다.

그릇은 여전히 간결하고, 육수는 말이 없다. 다만 찾아오는 얼굴들이 바뀌었다. 중장년의 향수였던 냉면은 이제 젊은 세대의 테이블에도 오른다. 복고를 입은 유행이 아니라, 조용하게 남은 음식이다.

상암 부벽루도 그 흐름을 따르고 있다. 과거의 방식은 그대로 두고, 지금의 입맛과 만나고 있다. 그릇 하나에 오래된 풍경과 오늘의 풍경이 겹쳐 있다. 설명보다 맛이 먼저고, 말보다 식사가 길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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