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주 연속 쌀값 상승…日 소비자, 수입산 쌀로 대체 움직임
kg당 1000엔 넘는 쌀…日 식탁 물가 ‘위기감’ 고조
[포인트경제] 도쿄의 한 한국식품점 매대에 “땅끝 햇살”이라는 이름의 쌀 포대가 놓였다. 한글로 큼직하게 적힌 브랜드명이 생소하게 다가왔을 일본 소비자들의 눈길이 쏠렸다. 전남 해남에서 자란 이 쌀은 지난 4월 초, 35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 시장에 정식 수입된 한국산 쌀이다.
도쿄 신오쿠보의 한인 마트에 진열된 한국산 쌀 ⓒ포인트경제 박진우 특파원
이번 수입은 그 상징성만큼이나 일본 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0kg짜리 포장이 일본 온라인 쇼핑몰과 도쿄 신오쿠보 한국슈퍼마켓에서 판매되자마자 열흘 만에 완판됐고, 곧바로 다음 달을 목표로 10톤의 추가 수입이 추진되고 있다. 총 22톤 수출이 예정돼 있으며, 이는 1990년 이후 한국산 쌀의 대일 수출 중 가장 큰 물량이다.
이처럼 한국산 쌀이 일본 시장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본 쌀값의 급등이 있다. 일본 총무성이 최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전국 평균 쌀값은 5kg 기준 4214엔(약 4만2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2.1% 상승했다. 특히, 쌀값은 15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며 가계 부담을 더욱 키우고 있다. 일부 매장에서는 kg당 1000엔을 넘는 경우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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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에서 평균 쌀 가격_15주 연속 상승/니혼 TV 캡쳐(포인트경제)
농협 측은 수출된 쌀이 해남 옥천농협에서 생산된 ‘땅끝 햇살’ 브랜드라고 밝혔다. 작년 생산된 쌀을 올해 3월 도정하여 일본으로 보낸 것이다. 수입가는 10kg당 9000엔으로, 한국의 시세보다 2배가량 비싸지만, 현지 물가를 감안하면 일본산보다 약 10% 저렴한 수준이다.
높은 관세 역시 이번 수출의 난관이었다. 일본은 해외산 쌀에 대해 kg당 341엔, 약 3400원의 관세를 매긴다. 이로 인해 과거에는 한국 쌀의 일본 수출이 실현되지 못했다. 실제로 지금까지의 한국산 쌀 대일 수출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의 구호물자에 한정돼 있었다. 판매용 수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이 쌀 수입에 나서게 된 데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했다. 재작년 흉작, 반복된 지진, 외국인 관광객의 급증, 그리고 이에 따른 쌀 사재기 등으로 인해 국내 수급이 심각하게 불안정해졌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비축미 21만 톤을 방출했고, 이달 말에도 10만 톤 추가 방출을 예고했지만, 가격은 여전히 진정될 기미가 없다.
이달 초부터 쌀을 한국에서 구입하는 일본인 관광객이 늘고있다/TV아사히 보도분 캡쳐(포인트경제)
여기에 최근에는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 관광객들이 귀국 시 쌀을 직접 사가는 경우도 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일본 내 쌀값이 지나치게 오른 반면, 한국에서는 품질 좋은 쌀을 절반 이하의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면세점이나 대형마트에서 쌀을 사서 기념품 대신 가져간다는 관광객도 적지 않다. 이러한 흐름은 일시적인 관광 수요를 넘어 한일 간 농식품 가격 역전 현상을 실감케 한다.
유통 구조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부 대형 유통업체가 경매에서 고가 매입한 쌀을 독점하고 중소 유통업체들의 접근을 막는 구조가 쌀값 급등을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정부 역시 농가 소득 감소를 우려해 강력한 가격 인하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일본 내 수입쌀 시장이 커지면서 미국 캘리포니아산과 대만산 쌀이 이미 진입한 상태다. 여기에 한국산 쌀이 합류하며 경쟁에 나섰다. 농협 측은 “일반 소비자뿐 아니라 소매업자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어 수출 확대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해졌다.
현재까지는 시범적 물량이지만, 일본 내 쌀 대란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큰 만큼, 한국산 쌀이 향후 주요 수입 품목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포인트경제 도쿄 특파원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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