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MIA 작가] 자신의 작업물이나 관련 근황을 전하는 동시에 동료 작가들의 작업 소식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채널은 아무래도 인스타그램일 것이다. SNS가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작업을 홍보했을지 상상이 어려울 정도로 이제 인스타그램은 작가에게 작업으로 소통하는 익숙한 현장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의도적으로 작년 초에 인스타그램 계정 하나를 삭제했다. 일상 계정과 작업 계정을 분리해서 운영하는 작가들을 종종 보는데, 계정 하나를 지우기 전까지는 나 또한 비슷한 방식으로 인스타그램을 사용하고 있었다. 시시콜콜한 일상이나 단상은 비공개 계정에 올리고, 작업과 관련된 내용이나 소식은 비즈니스 계정에만 올리는 식으로. 그렇게 3, 4년 정도를 이어오다 보니 각 계정에 뜨는 팔로워들 스토리와 피드의 결이랄까 성격은 차이 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비공개 계정에는 주로 친구들이나 사석에서 알게 된 지인들의 사적인 사진들, 작업 계정에는 주로 작가들의 전시 소식이나 작업물이 업로드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모든 특별한 일은 이 단어에서 시작하며 특별하지 않은 일에도 색깔을 부여할 수 있는 마법 같은 단어로서), 무심코 비공개 계정에 뜨는 친구들의 스토리를 넘겨 보다가 나는 이 계정을 지워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으며 바로 행동에 옮겼다. 그동안 인스타그램을 여러 계정으로 운영하는 방식에 관해 의문을 품고 있긴 했는데, 때마침 노선을 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어떠한 확신으로까지 금세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제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는’ 방식으로는 작업에 에너지를 집중시키기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시각 예술가이므로 그만큼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명쾌한 논리와 함께.
시간이 갈수록 이 작은 사건-추억이 쌓인 시간을 지우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므로-의 이면에는 다소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는 사실이 차츰 드러났다. 비공개 계정을 지운 진짜 이유를 작업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말하기엔 어쩐지 빈약하게 느껴졌다. 그것보단 내게 ‘외면하고 싶고 잊어버리고 싶은 대상이 생겼다’라는 문장이 그때의 내 행동 동기와 기대한 결과를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표현인 것 같았다. 나의 기억 용량 혹은 시각 용량에 제한이 있는 것 같고 그렇다면 꼭 필요한 것으로만 채워야겠다는 욕구란, 엄밀히 따져보면 예술이라 부르기 모호한 것들까지 포용하고 싶지 않다는 반작용으로 도출된 결과 같았다.
작업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삶을 위한 결정에 가까웠던 것 같다. 나름 진지하게 내린 이런 결정이 윤리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냥’ 친구들도 예전처럼 만나고 가족들과도 예전처럼 지내고 작업도 예전처럼 한다는 이런 관성이 나는 조금 어딘가 이상한 것 같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로 10년 전과 똑같이 살 거라면 내 예술과 작업의 새로운 점,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만들어질까? 너무 비약된 논리일까. 그럴지라도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최근의 나는 삶에서 만들어지는 변곡점을 기민하게 감지해야만 예술로, 작업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확고해지고 있으며 나도 모르는 새 그걸 실천에 옮기고 있다.
앞에서 늘어놓은 일련의 행위와 생각들을 정리하면 결국, 그림을 삶에 붙이기 위해 가장 먼저 했던 일이란 그 외의 가지들을 잘라내는 것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도 있기는 하다. 예전엔 작가들의 그림만 눈에 들어왔다면 이제는 그림을 둘러싼 그들의 일상 또한 들여다보게 되었다는 것, 처음엔 작업 위주의 내용만 올리다가 나 또한 일상적인 소식(지인과 웃긴 카톡 캡쳐, 맛있는 음식 사진, 꽃 사진 등)을 스토리에 올리게 되었다는 것. 이러한 흐름이 아이러니한 변화인지 자연스러운 수순인지는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지만, 어찌 되었든 1년 전과 달리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는 내 눈의 목적은 가능한 하나로 향하게 되었다는 변화만은 확실하다. 어플을 켜는 목적이 꽤 단순해졌기 때문이다. 나의 작업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 또는 다른 작가들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 가능한 이 중심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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