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노태하 기자] 트럼프 관세 정책으로 한국 기업들의 미국 현지 대규모 투자가 잇따르고 있지만, 국내 산업 공동화에 대한 경고음 또한 높아지고 있다. 이는 미국의 고율 관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보호무역 정책에 대응하려는 기업들의 전략적 판단이지만, 대규모 이전으로 인한 국내 고용·생태계 붕괴로 공동화 현상이 현실화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들의 대규모 대미 생산시설 투자로 인한 국내 산업의 일자리, 기술, 설비, 생태계 등이 약해지는 공동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달 31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최근 자유무역체제가 붕괴되고 자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로 글로벌 패러다임이 변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핵심기업들의 해외투자 확대가 국내 산업 공동화를 초래해 대한민국의 경제기반을 붕괴시키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기업이 해외 투자에만 집중하면 대한민국은 산업공동화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일본 언론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지난달 26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관세에 대응해 미국에서 공급망을 만드는 것은 매출 최대 국가·지역인 미국 시장을 지키는 한편, 한국 내 공동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산업 공동화’는 기업의 핵심 생산기능과 기술력이 해외로 이전되면서 국내 산업의 기반이 점차 약화되는 현상을 뜻한다. 단순히 설비 이전에 그치지 않고 고용 감소, 연구개발 위축, 하청 생태계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 국가경제의 중장기 리스크로 평가된다.
실제 현대자동차와 현대제철·포스코를 비롯한 한국 주요 대기업들은 현재 대미 투자를 본격화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2028년까지 총 210억 달러(약 31조원)를 미국에 투자할 계획을 밝히며, 전기차 전용공장과 부품공장 건설에 나서고 있다. 이 중 86억달러는 미국 내 앨라배마·조지아주 설비 확장에 투입되며, 향후 미국 현지에서 전기차 생산의 상당 부분을 소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제철도 현대차와 함께 미국 루이지애나에 연산 270만톤 규모의 전기로 제철소를 짓기로 했다. 이는 국내 생산능력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포스코 또한 해당 제철소에 지분 투자하기로 하면서 미국 내 고급강판 공급체계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밖에 삼성, SK, LG 등 국내 대기업의 반도체·배터리 계열사들도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과 보조금 혜택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현지에 수십조원 규모의 생산시설 투자를 진행 또는 검토 중에 있다.
업계에서는 산업 공동화 방지의 핵심 열쇠로 △국내 규제 환경 개선 △기업의 사업 환경 안정화 △정부의 유연한 정책적 지원을 꼽고 있다. 국내 제조업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조건으로 정책적 뒷받침과 제도적 유연성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산업부는 국내 제조 대기업들의 미국 투자 확대가 섣불리 산업 공동화로 해석되는 것에 대해 선을 그었다.
산업부 관계자는 "특히 현대제철·포스코가 미국에 공장을 짓는 이유는 관세 등 수출 장벽을 우회해 미국 내 수요에 대응하려는 것”이라며 “국내에서 생산한 철강을 미국에 수출하려 해도 장벽이 높아 수출이 제한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현지 진출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출 확대가 차단된 상황에서 현지 생산으로 전환한 전략일 뿐, 국내 산업 기반의 이탈로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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