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전 세계 14억 가톨릭 신자를 이끌어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이하 현지시간) 88세로 선종했다. 2013년 최초의 남미 교황으로 즉위 후 12년간 청빈의 삶을 몸소 실천하며 전 세계를 향해 평화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 왔다.
교황은 한국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즉위 후 아시아 국가 중에는 한국을 처음으로 찾았고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차례 방북 의사를 밝혔다. 또 이태원 참사나 제주항공 참사 등이 생길 때마다 별도의 위로 메시지도 전했다.
21일 오전 선종...“종전 촉구” 부활절 강론 마지막 메시지
교황청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21일 아침 7시 35분 선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폐렴으로 지난 2월 14일부터 로마 제멜리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았다. 입원 중 상태가 악화하기도 했지만 지난 3월 23일 38일간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했고, 최근에는 활동을 재개해왔다.
교황은 부활절을 앞두고 이탈리아 로마 시내의 교도소를 깜짝 방문하고 이탈리아를 방문한 JD 밴스 미국 부통령을 비공개로 면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날 뇌졸중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후 심부전이 이어지면서 끝내 숨을 거두게 됐다.
교황의 마지막 메시지는 20일 부활절 강론이 됐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사에서 “가자지구의 상황이 개탄스럽다. 인질을 석방하고 평화의 미래를 열망하는 굶주린 이를 도와줄 것을 호소한다”며 종전을 촉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는 고인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교황청은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의 지하에 특별한 장식 없이 간소한 무덤에 묻어달라는 유언이 담긴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공식 장례 예식은 21일 저녁 8시 그가 거주했던 산타 마르타의 집 예배당에 마련된 관에 유해를 안치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이르면 오는 23일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옮겨 일반 대중의 조문을 받을 예정이다.
최초의 남미 교황…청빈한 삶에 진보적 정책 펼쳐
아르헨티나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교와 추기경으로 있을 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빈민촌을 거리낌 없이 찾으며 빈자들의 친구가 되었다. 마약이 유통되고 폭력이 흔한 우범지대여도 교황은 개의치 않고 동행하는 사람 없이 빈민촌을 찾았다고 한다.
지난 2013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건강상의 문제로 자진 사임하면서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이들의 성자’라 불리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정했다. 이후 그는 그 즉위명처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세상과 교회의 중심으로 이끌기 위해 애썼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임자들이 애용한 순금 가슴 십자가 대신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 시절부터 착용한 철제 가슴 십자가를 사용했다. 선출된 다음 날 바티칸에서 준비한 메르세데스벤츠 차량 대신 작은 폭스바겐 차량을 타고 대성당으로 향하기도 했다. 또한 호화로운 관저 대신 일반 사제들이 묵는 공동숙소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생활하며 청빈한 삶을 몸소 실천했다.
1천282년 만의 비유럽권이자 최초의 신대륙 출신 교황이라는 점도 이례적이었으나 역대 교황 중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즉위 후 가톨릭교회가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더 포용적으로 바뀌고 평신도의 목소리를 존중해야 한다며 진보적 개혁을 추진했다. 지난해에는 동성 커플에 대한 가톨릭 사제의 축복을 허용해 가톨릭 내 보수진영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취임 이후 성직자의 교회 내 아동 성추행 사실과 교회의 은폐 문제가 세계 곳곳에서 드러나며 가톨릭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자 아동 성범죄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밝히며 2014년 교황청 산하 미성년자보호위원회를 설립해 적극적인 해결에 나섰다.
이후 교황청은 2021년 6월 미성년자 성범죄를 저지른 성직자 처벌을 명문화하는 등 38년 만에 교회법을 개정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 곳곳에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를 보낸 종교 지도자로도 평가받는다.
적대적 관계에 있던 미국과 쿠바의 2015년 국교 정상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고, 2017년에는 로힝야족 추방으로 ‘인종청소’ 논란이 불거진 미얀마를 찾아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또, 지난 2021년에는 이라크를 찾아 무장테러 희생자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전쟁이 발발한 이후 교황은 끊임없이 평화의 메시지를 냈고, 2023년 10월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전쟁에 대해서도 민간인 희생을 막고 분쟁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밖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자유주의를 비판했고, 기후 위기에 적극적인 대처도 촉구했다.
한국 아낀 프란치스코, 참사 때마다 위로…방북은 끝내 무산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에 각별한 모습을 보였다. 그가 즉위 후 선택한 아시아 첫 방문지가 한국이었다는 점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방한 중 세월호 참사 유족을 위로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나 꽃동네 장애인 등과 만남을 가졌다.
교황은 한국 사회에 참사가 생길 때마다 위로의 메시지를 냈다.
지난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 때는 주일 기도 말미 신도들에게 “어젯밤 서울에서 갑작스러운 압사 사고로 인해 비극적으로 숨진 많은 희생자, 특히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제안했다.
지난해 12월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때도 “비극적인 비행기 추락 사고로 슬퍼하는 한국의 많은 가족에게 애도를 표한다”며 “생존한 사람, 그리고 세상을 떠난 사람을 위한 기도에 동참한다”고 밝혔다.
또, 올봄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산불이 확산해 큰 피해가 발생하자 위로의 뜻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는 한반도 평화에도 특별한 관심을 내비쳤다. 여러 차례 직간접으로 방북 의사를 밝혔지만 끝내 성사되지는 못했다.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 개최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두 번째 방한이 기대됐으나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방한은 차기 교황의 몫이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대 한국 대통령들과도 긴밀하게 소통했다.
그는 2014년 8월 방한 때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공항 영접을 받았고 2개월 후 박 대통령이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하면서 방한에 대한 답례 형식으로 교황과의 재회가 이뤄졌다.
당시 박 대통령은 “통일된 한국에서 교황님을 다시 뵙기를 바란다”고 밝혔고, 교황은 “동북아 평화와 화해, 그리고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같이 기도합시다”라고 화답했다.
가톨릭 신자인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10월과 2021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바티칸을 찾아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교황청은 문 대통령이 처음 방문한 날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를 집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 대통령과 55분간 면담했다. 이는 앞서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면담한 시간(30여분)보다 훨씬 길었다.
국내 정치권 애도 메시지 “교황 가르침. 사랑의 유산 이어갈 것”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자 국내 정치권과 대선 후보들도 일제히 애도의 메시지를 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2일 페이스북에 “2014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며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껴안아주고,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미사를 집전하시던 모습이 생생하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와 평화의 상징이었고, 사회적 약자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포용을 보여줬다”라고 애도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선종 소식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사는 법을 배우려면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가르침을 마음 깊이 새기며 교황께서 남기신 사랑의 유산을 이어가겠다”고 전했다.
박찬대 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온한 안식을 기도한다. 교황께서는 가난하고 약한 자를 품는 것이 진정한 권위임을 온 생애를 통해 보여주셨다”며 “소외된 이들과 평생을 함께하셨던 따뜻한 목자의 발자취를 오래도록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선 경선 후보도 페이스북에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더 많은 정치인들을 허락해 달라던 교황님의 호소를 제 삶으로 실천하겠다”며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고, 절망 가운데 희망을 심는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소명”이라고 했다.
김경수 후보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우리 국민에게 주신 안식과 평화를 잊지 않겠다”고 애도했고 김동연 후보는 “우리는 교황님께서 남기신 빛으로 서로를 비추고 사랑하며, 더 나은 세상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페이스북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선종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저 역시 천주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이제 하느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 바란다”고 썼다.
김문수 대선 경선 후보는 2014년 방한 당시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교황을 만났던 일화를 소개하며 “이제 하느님의 품안에서 평안과 안식을 누리시길 기원한다”고 했다.
나경원 후보는 “그분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약자와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몸소 실천하겠다”고 했고 안철수 후보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를 끊임없이 강조하시며,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셨고, 생태 환경의 보존과 종교 간의 대화, 화해에도 큰 족적을 남기셨다”고 평가했다.
한동훈 후보는 “우리가 걸음을 옮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멈추어 서게 된다는 교황님의 말씀처럼, 멈추지 않고 더욱 따뜻하고 포용적인 사회를 향해 걸어가겠다”고 적었다.
홍준표 후보도 “평생 가난한 자와 약자의 편이셨던 교황님, 이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시기를 기도한다”고 썼다.
전 세계 애도 물결, 고국 아르헨티나 7일간 국가애도기간...트럼프 “장례식 참석”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후 전 세계에서는 추모 물결이 일고 있다. 교황의 모국인 아르헨티나 정부는 21일부터 7일간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스페인도 사흘의 애도 기간을 공표했고, 브라질 역시 일주일의 애도 기간을 선언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추모의 의미로 조기를 게양하기로 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교황의 선종을 추모하는 의미로 21일 밤 에펠탑 조명을 소등했고,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는 교황의 삶을 기리는 88번의 조종(弔鐘)이 울렸다.
세계 정상들의 추모 메시지도 이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평화 속에 잠들기를”이라며 “그와 그를 사랑한 모든 이에게 신의 은총을 빈다”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공공건물에 조기 게양을 명령하는 한편, 장례식에도 참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국 국왕 찰스 3세는 “깊은 슬픔을 느낀다”라며 “인간과 지구를 보살핌으로써 교황은 무수히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라고 평가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크나큰 겸손으로 가장 취약한 이들의 편에 섰다”라고 회상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교황이 러시아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 간 대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했다. 인도주의와 정의라는 높은 가치의 수호자”라고 칭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교황은 사회의 가장 약한 구성원들과 정의와 화해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헌신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교황의 우정, 조언, 그리고 가르침을 누릴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그 가르침은 결코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라고 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레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가톨릭 교회를 훨씬 뛰어넘는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의 겸손과 사랑은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매우 순수했다”라며 “교황의 유산이 우리 모두를 더욱 정의롭고 평화로우며 자비로운 세상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는 생각에서 위안을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슬람 시아파 맹주 국가인 이란의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도 애도 메시지를 내고 “세계의 비인도적 행위를 거부하는 인도주의적인 태도는 그 영적인 삶과 리더십의 빛나는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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