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3일 오후 추기경들의 비공개 ‘끝장 회의’ 콘클라베에서 새 교황이 선출된 뒤 교황청 전임장관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이 물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교황 선출을 수락하시겠습니까”
“수락하겠습니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십니까”“프란치스코로 불리겠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살던 조부모가 아르헨티나로 건너와 태어난 프란치스코 교황의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었던 그는 왜 교황의 이름으로 ‘프란치스코’를 선택했을까.
교황은 자서전 ‘희망’에서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주변에서 만났던 많은 ‘프란치스코’를 소개했다.
이탈리아 급진당 소속 활동가였던 그의 조부 이름에 ‘프란치스코’가 있다.
그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신학교를 졸업한 뒤 들어간 예수회 성가정 수련원의 원장은 그의 신앙인 초기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소개했다.
그는 사제 서품 받을 때 ‘아버지 신부님’(신학교에 입학할 때 추천해주는 신부님)이었다. 그 원장의 이름이 프란치스코 사라고시 신부였다.
프란치스코가 교황으로 최종 선출되는데는 3일간 6차례 투표를 거쳤다.
그는 자신이 교황으로 최종 선출된 순간 브라질 타쿠아리 프란치스코회 신학교 출신 우메스 추기경이 한 마디했다.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마십시오”
그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의 머리에 떠오른 이름이 ‘프란치스코’였다고 자서전에 적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출하는 3일간의 콘클라베 기간 중 성 베드로 광장에는 한 노숙인이 “프란치스코 1세 교황”이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다녔다고 한다.
그는 당시에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된 후 한참 후에야 여러 신문이 그 노숙인의 사진을 보도했을 때 그 노숙인이 기억속에 되살아났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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