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황수민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현실화하면서 K뷰티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수출 비중을 늘려가고 있는 국내 화장품 업계 입장에서는 관세 리스크가 분명한 부담 요인이지만 고마진 구조와 가격 경쟁력, 현지 생산 체계 등을 기반으로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현지 시각)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상호 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했다. 미국이 우리나라에 적용하기로 한 상호관세율은 25%지만 국가별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면서 현재 일부 품목에 기본 관세 10%가 적용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 혜택을 받아온 국내 화장품 업계는 이번 관세 부과로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K-뷰티는 가격 경쟁력과 제품력을 바탕으로 미국 시장에서 성장세를 이어온 만큼 직접적인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 화장품 수출액은 17억100만달러(한화 약 2조5000억원)로, 12억6300만달러(약 1조8000억원)를 기록한 프랑스를 처음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관세에 따른 영향이 예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권우정 교보증권 책임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화장품 산업은 의류나 전자제품에 비해 원가율이 낮은 고마진 산업”이라며 “관세 부담을 일정 부분 흡수할 수 있는 구조”라고 진단한 바 있다.
이번 관세 부과에서 중요한 변수는 타국 대비 상대적인 관세율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미국 화장품 수입 상위국은 한국(22%), 프랑스(17%), 캐나다(13%), 이탈리아(12%), 중국(9%), 멕시코(4%) 등 순이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발표한 국가별 상호관세율은 한국 25%, 프랑스 20%, 캐나다 25%, 이탈리아 20%, 중국 54%, 멕시코 25% 등으로 대부분 한국과 유사하거나 더 높은 수준이다.
가격 경쟁력 역시 여전히 유효하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미국 내 상위 10대 화장품 브랜드의 평균 단가는 35달러(약 5만원) 수준이지만 한국 브랜드는 21달러(약 2만9000원)로 40%가량 저렴하다.
한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25%의 관세가 부과되더라도 단가 조정이나 용량, 프로모션 전략으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코스맥스, 한국콜마, 코스메카코리아 등 국내 주요 화장품 ODM(제조업자 개발생산) 업체는 미국 내 이미 생산 거점을 확보하며 경쟁력 확보에 나섰다. 작년 3분기 캘리포니아에 영업사무소를 개소한 코스맥스는 지난해 15건의 프로젝트를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미국 뉴저지 공장의 선크림 생산 품목을 전년 대비 3배 이상 확대할 계획이다.
한국콜마는 올해 상반기 중 미국 제2공장을 가동할 예정이다. 기존 제1공장은 색조 제품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코스메카코리아는 지난 2018년 잉글우드랩의 미국 생산 공장을 인수한 바 있다.
주요 K뷰티 브랜드는 글로벌 브랜드와 제휴, 대형 유통망 입점, 지역 특성에 맞춘 제품 개발 등 현지화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까지 K뷰티의 미국 내 주요 유통채널은 아마존 중심의 온라인이었으며, 온라인 매출 비중은 70~80% 수준으로 추산된다. 미국 화장품 시장에서 오프라인 채널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80%에 달해 K뷰티가 오프라인 채널 확장에 나설 경우 성장 여지가 크다는 평가다.
판매량 증가에 따른 ‘스케일 효과’도 기대 요인으로 꼽힌다. 브랜드 인지도가 확대되며 판매 수량이 늘수록 관세 부담의 상대적 비중이 줄어들어 수익성 방어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다만 현지 생산시설을 갖추지 못한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은 비교적 타격이 클 수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대응해 미국 내 생산시설 구축을 가속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승환 아모레퍼시픽 대표는 최근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미국 고객사들과 비상계획을 논의하고 있으며 향후 3∼5년 안에 미국 내 물류 및 모듈형 제조시설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G생활건강은 올해 중점적으로 추진 중인 글로벌 사업 리밸런싱(재구조화) 전략을 통해 미국 관세 정책을 반영하고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할 계획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채널을 동시에 확장해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권 연구원은 “K-뷰티는 가격 경쟁력과 고마진 구조, 미국 외 지역으로의 시장 다변화는 물론, 향후 판매량 증가에 따른 스케일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는 구조적 강점이 있다”며 “단기적인 관세 부담에도 실적 모멘텀은 충분히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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