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상법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해당 사안은 오는 6월 치러질 대선 이후 들어서는 정부가 떠안게 됐다. 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이 여당으로 올라설 경우 상법개정안은 무사히 통과될 전망이다. 반면 국민의힘이 여당으로 복귀할 경우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과의 갈등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개정되는 상법이 기업과 시장의 판을 뒤흔들 수 있어서다. 소액주주들의 힘은 강해지고 기업들은 잇따르는 소송에 휘말릴까 우려하고 있다. 개정된 상법 도입으로 이뤄지는 변화가 우리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풀어본다. #편집자주
"주주 이익 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을 재추진하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는 21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같이 적었다. 그는 2023년 나온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를 인용해 "한국의 기업지배구조 순위는 아시아 12개국 중 8위에 불과하다"며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고질적인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이사도 선임될 수 있도록 집중투표제를 활성화하겠다"며 "감사위원의 분리 선출도 단계적으로 확대해 경영 감시 기능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후보를 필두로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상법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 전체'로 확대하고 집중투표제의 의무화 등이 골자다.
상법 개정의 필요 요인은 첫째로 투자자 보호다. 2020년 '동학개미운동'으로 개인 투자자가 급증하면서 소액주주의 목소리가 커졌다. 두 번째로는 글로벌 스탠더드다. 미국과 유럽은 이미 엄격한 기업 지배구조를 요구한다.
상법개정안을 반대하는 쪽은 기업들이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가 소송 남발로 이어져 경영진이 위축되고,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권 공격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 소송과 분쟁 등으로 기업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단기 주주이익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토로한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주요 경제 8단체는 지난 2월 성명을 통해 "상법 개정은 이사에 대한 소송 남발을 초래하고,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권 공격 수단으로 악용돼 대한민국을 기업하기 힘든 나라로 만들 것"이라고 호소한 바 있다.
반대로 찬성하는 쪽은 의사결정 당시 대주주에게만 유리했던 과거와 달리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고 기업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화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대주주의 전횡으로 소액주주들의 피해가 잇따랐던 만큼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상법개정안이 필수적이라는 데에 입을 모은다. 일례로 이경연 대신증권 연구원은 "최근 LG화학의 LG에너지솔루션 물적분할 및 카카오의 자회사 상장 사례 등은 모회사의 일반 주주들이 겪는 피해는 명확히 드러냈다"며 "물적분할과 자회사 상장 과정에서 일반주주의 권리는 무시되었으며, 상당한 기업가치 희석과 장기적인 주가 하락이 발생했다"고 꼬집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재계의 주장처럼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로 소송이 남발하고 기업경영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미국 판례와 법 이론상 일상적 경영활동이 아닌 특수관계인 거래와 같은 이해상충 거래 등 특정 경우에 한정된다고 반박했다. 특히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최근 18개월 이사회 의안 91건 중 충실의무 적용 대상은 4건(4%)에 불과했으며 대부분 의안은 재무제표 승인, 배당 등 이해상충 없는 사안으로 소송 대상이 아님을 강조했다.
상법 개정은 단순한 법률 개정이 아니다. 이는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주주와 소비자의 권리를 강화하며, 한국 경제를 글로벌 무대에 올릴 기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부와 기업이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이경연 연구원은 "상법 개정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주회사 전환과 기업분할 등 기업 구조조정 촉진 제도들이 시간이 지나며 본래 목적과 달리 악용된 부작용을 해결하려는 것"이라며 "단순히 주주권 강화를 위한 주주 중심주의가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이 선진화되고 정상화되기 위한 필수적이고 역사적인 전환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성모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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