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문영서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對)중국 ‘관세 폭탄’에 중국이 추가로 ‘맞불 관세’를 놓으며 글로벌 무역 분쟁을 계속하고 있다. 2018년 1차 무역분쟁 이후 재점화된 이번 갈등은 무역수지를 넘어 기술 패권과 공급망 재편을 둘러싼 전략 경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21일 미국 투자정보 사이트 인베스토피디아가 지난 1월 29일 발표한 ‘세계 경제 규모 기준 상위 25개국’에 따르면 2025년 기준 미국은 약 30조3000억달러~30조4000억달러로 전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약 25%를 차지하며, 중국은 약 19조5000억~19조6000억달러로 약 20%를 차지한다.
경제정보사이트 포커스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 최대 수출국으로 전 세계 무역에서 약 13%, 미국은 약 8~9% 수준으로 추정된다.
2025년 기준 미국과 중국은 전 세계 GDP의 약 45%에 달하고, 글로벌 무역 측면에서도 두 나라의 비중은 20%를 훌쩍 넘는 것으로 평가된다. 경제 규모와 무역 영향력 양면에서 미중 두 국가는 여전히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 1막, 패권국 견제의 신호탄
1차 미중 무역분쟁은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 기술 이전 강요, 불공정 무역관행, 그리고 막대한 무역적자를 문제 삼으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18년 기준 미국은 연간 8913억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보였고, 이중 47%(약 4195억달러, 서비스수지 제외)가 중국과의 교역에서 발생했다.
분쟁 초기 실무자들은 무역수지 개선에 초점을 맞춰 협상을 진행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결과를 뒤집어 2018년 7월과 8월 두 단계에 걸쳐 총 약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 상품에 25%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중국은 동일한 금액과 관세로 맞대응했다.
무역분쟁이 격화되던 2018년 6~7월, 위안화 가치는 달러 대비 8% 가까이 급감했다. 이에 2019년 8월 미국은 중국이 인위적으로 환율을 조작해 국제 무역에서 불공정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려 한다며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한 뒤 2020년 1월 해제했다.
이는 곧 무역전쟁이 통화·금융전쟁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두 나라의 분쟁은 전 세계 여러 나라에 다양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양국의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며 세계경제 전체의 성장세가 둔화됐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등은 미중 무역전쟁이 글로벌 경기 위축, 교역량 감소, 투자 위축 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양국이 부과한 고율 관세에 두 나라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가치사슬(공급망)이 붕괴하거나 재편됨에 따라 한국, 일본, 독일 등 중간재 수출국들의 수출이 감소하고, 생산 및 공장가동률이 하락하는 등 제조업 전반에 충격이 발생했다.
2018년 코스피는 미중 무역전쟁과 반도체 등 주력산업 부진 영향으로 연간 19%까지 하락한 바 있다. 다만 2019년 1분기 미국의 중국 제재품목 수입시장에서 한국산 수입 증가율이 20.5%에 달하는 등 자동차, 기계류, 전기·전자제품 외 일부 품목에서 한국의 대미 수출이 증가하는 반사이익을 보기도 했다.
베트남 등 일부 아세안 국가들 역시 미국 시장에서 중국산을 대체하며 수출이 크게 늘어나기도 했다. 실제 1차 미중 무역분쟁 기간 동안 베트남의 대미 수출은 1년 만에 35.6% 증가했고, 특히 미국이 중국에 관세를 부과한 품목에서 베트남의 점유율이 크게 확대됐다. 특히 베트남산 전자제품 수입은 89%(122억→230억달러), 통신장비는 114.4%(74억달러 증가), 반도체는 103.1%(18억달러 증가) 각각 늘었다.
2020년 1월 양국은 1단계 무역합의를 체결했지만 바이든 정부에서도 대부분의 관세는 그대로 유지되는 등 일시적 휴전에 그쳤다.
1단계 합의에는 중국의 미국산 농산물 구매 확대(2년간 2000억 달러 추가), 지적재산권 보호, 기술이전 강요 금지, 금융시장 개방, 환율 투명성 등이 포함됐으나 중국의 미국산 제품 구매 이행률은 60% 수준에 그쳤다.
해소되지 않은 갈등, 트럼프 재집권과 2차 무역분쟁
지난해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2950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 경제의 약 1%에 해당하는 상당한 규모의 무역 적자다.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이민과 마약 유입 차단을 명분으로 중국산 전 제품에 10% 추가관세를 부과하며 분쟁이 재점화됐다. 중국뿐만 아니라 멕시코와 캐나다에도 25%의 관세 부과를 예고하며 중국에 집중했던 과거의 무역분쟁과는 다르게 거의 모든 교역국을 대상으로 고율 관세를 동시다발적으로 부과하는 전면적 보호무역주의를 드러냈다.
이에 중국 재무부는 미국산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에 15%의 관세를, 원유, 농기계, 대형 차량에는 10%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고 PVH·Illumina 등 미국 기업을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리스트’에 추가하는 등 정면으로 맞섰다. 또한 구글에 대한 반독점 조사를 개시하고 희토류 등 금속 수출을 통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무역분쟁이 비관세의 영역까지 확대됨을 나타낸다. 이번 분쟁은 단순한 무역수지 개선을 넘어 글로벌 패권 경쟁, 첨단기술 주도권, 공급망 재편 등 구조적 요인이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3월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 관세를 20%로 인상함에 따라 중국은 미국산 농산물(닭고기, 밀, 옥수수, 면화 등)에 추가 관세 부과 및 목재 수입 중단, 대두 수입 허가 취소 등의 보복조치를 취했다. 대두 부문에서 중국은 가장 큰 수출 시장이기 때문에 미국 내 대두 농부들은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미국 내 인플레이션 역시 가속화됐다. 관세정책이 유지되는 한 기업들은 이윤 유지를 위해 트럼프의 관세 중 일부를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메리츠증권 이승훈 연구원은 “표면적으로 트럼프는 무역 적자를 줄이고 싶어하고, 무역적자의 원인이 되는 국가들에서 미국산 제품이 더 많이 팔리게 하거나, 혹은 많이 사거나, 미국에 투자를 더 많이 해서 수입 대체를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기를 원한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미국이 투자를 정말 많이 유치할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인 것 같다”고 짚었다.
이어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 인하에 대해서는 “연준은 완전고용과 물가안정 목표가 있는데 실제 경제에서 두 목표와 실제치 간의 괴리가 얼마나 크게 벌어졌느냐가 연준의 금리 결정을 판단하는 잣대”라며 “경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안 좋고, 관세가 길어지지 않아 협상용으로 상반기 중에 정점을 찍는다고 하면 물가 충격도 반짝하고 끝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연준의 하반기 (금리)인하에 대한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금리를 내려서 물가가 오른다는 얘기는 경기가 좋아져서 수요 견인형 물가 상승이 나타난다는 얘긴데 지금은 관세가 소비자들의 후생을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어떤 부분의 힘이 더 세냐에 따라서 조금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연준 제롬 파월 의장 역시 16일(현지시간) 시카고 경제클럽 연설에서 “관세는 적어도 일시적인 인플레이션 상승을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인플레이션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3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상승률은 2.6%로 전망했다.
다만 시장 관측대로 올해 총 3~4차례(각 0.25%포인트) 기준금리 인하가 단행될 경우 관세 영향과 더불어 단기적인 물가 상승을 넘어서 중장기적 물가 압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성대 경제학과 김상봉 교수는 “중국은 디플레이션 상태고 미국은 스태그플레이션에 가까워지는, 물가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는 상태라서 트럼프의 의도대로 가기는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산업정책으로 공장을 미국으로 불러들이는 경우에 10달러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이 인건비 같은 것 때문에 300달러가 드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며 “제조업을 다 미국 내로 들여오게 되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물가 상승을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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