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메디먼트뉴스 이혜원 인턴기자] 삶은 순간들로 구성된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디 아워스 The Hours》(2002)는 이 단순하지만 심오한 진실을 놀랍도록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 영화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원작으로 하되, 단순한 문학적 각색을 넘어 문학과 철학, 여성 서사와 존재론적 질문을 교차하는 영화적 시詩로 확장되었다.
영화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세 명의 여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들의 삶은 한 권의 책, 『댈러웨이 부인』과 감정적으로 얽혀 있으며, 한 날 한 시를 살아가듯 교차 편집된다.
1. 1923년 – 버지니아 울프
런던 근교 리치먼드에 살고 있는 작가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는 정신질환과 싸우며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 중이다. 그녀는 일상에 몰려드는 불안과 우울 속에서도 창작을 멈추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내면의 고통은 점점 커지고, 버지니아는 삶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끝낼 것인가를 놓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2. 1951년 – 로라 브라운
로스앤젤레스 교외에 사는 전업주부 로라 브라운(줄리안 무어)은 생일 케이크를 만들며 하루를 시작한다. 겉보기엔 평온한 삶이지만, 그녀는 가정이라는 틀에 갇힌 채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 침대에서 몰래 『댈러웨이 부인』을 읽으며 다른 삶을 상상하고, 아이를 유치원에 맡긴 후 호텔방에서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한다. 결국 로라는 예상치 못한 결단을 내리게 된다.
3. 2001년 – 클라리사 본
뉴욕에 사는 편집자 클라리사 본(메릴 스트립)은 친구 리처드의 문학상을 축하하기 위한 파티를 준비한다. 에이즈로 생을 마감하려는 리처드를 돌보며, 과거의 감정과 지금의 일상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녀는 리처드에게 과거 한때 ‘댈러웨이 부인’으로 불렸던 시절을 떠올리고, 사랑과 상실 사이에서 삶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이렇게 세 여성의 이야기는 각자의 ‘하루’를 따라가며 전개되지만, 삶과 죽음, 억압과 자유, 선택과 책임이라는 공통된 주제 아래 서로를 반영한다. 그들의 감정은 시대를 넘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관객은 이 ‘세 겹의 하루’ 속에서 인간 존재의 깊이를 마주하게 된다.
이 영화는 세 여성의 삶을 통해 여성 서사의 다층성을 드러낸다. 특히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벗어난 감정의 흐름, 여성 간의 정서적 유대, 퀴어적 정체성이 영화 전반에 은근하게 퍼져 있다. 이성애 중심적 세계관을 벗어난 여성적 연대의 가능성을 말하는 영화로, 이 영화의 인물들을 ‘삶과 죽음 사이의 섬’에 서 있는 존재로 비유한다. 세 여성은 고립되어 있지만, 결국 서로를 통해 연결되고, 그 연결은 잔잔하지만 강한 위로로 귀결된다.
《디 아워스 The Hours》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삶을 선택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세 명의 인물은 각기 다른 선택을 한다. 버지니아는 죽음을 택한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억제할 수 없고, 글도 자신을 구해주지 못한다고 느낀다. 로라는 도망친다. 아이를 두고 삶을 떠나는 선택은 무책임처럼 보이지만, 이는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필사적인 결단’이다. 클라리사는 남는다. 과거의 상실과 친구의 죽음을 끌어안고도 계속해서 ‘현재’를 살아가는 쪽을 택한다. 시간이 교차하는 구조 속에 죽음이 아니라 삶의 실존성에 집중하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영화는 글쓰기와 읽기, 기억과 시간이라는 문학적 주제를 시청각 언어로 품어내며, 관객 각자의 내면을 응시하게 만든다. 《디 아워스 The Hours》 역시 화려한 사건 없이도, 단 한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복잡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더 깊이,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그 물음에 답하는 건 결국 관객 자신의 몫이다. 이 영화는 단지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호흡하며 사유하게 만드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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