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참상 기록한 '우한일기' 저자…中 토지개혁 다뤄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중국 쓰촨 분지의 동쪽에 있는 촨둥의 한 작은 마을.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젊은 여성이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강에서 발견돼 가까운 군 병원으로 옮겨진다.
죽은 줄만 알았던 여성은 며칠 만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다. 하지만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과거를 떠올리려 할 때마다 심각한 불안감이 엄습해 결국 기억을 잊고 살아가기로 한다.
'딩쯔타오'라는 이름을 짓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던 여성은 노년에 이르러 장성한 아들이 마련한 집에서 행복한 여생을 보낼 일만 남는데,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다.
과거 딩쯔타오는 부유한 지주 계급의 여인이었으나 토지개혁 때 가족의 재산을 모두 몰수당한다. 더 큰 모욕을 겪기 전에 가족은 모두 목숨을 끊기로 결심하고 딩쯔타오에게 뒷일을 맡긴다.
딩쯔타오의 가족들은 마당에 각자 누울 자리를 파고 독약을 마신 뒤 들어가 눕는다. 딩쯔타오는 삽을 들어 땅에 들어간 이들의 몸 위로 흙을 덮는다. 가족들은 관을 구하지 못해 '연매장'을 선택한다.
"화원은 죽은 듯 고요했다. 사방이 구덩이고 구덩이마다 옆에 흙이 쌓여 있었다. 루씨 집안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파놓은 구덩이였다. 그들이 스스로를 위해 쌓아놓은 흙이었다. 그들은 구덩이를 파고 흙을 잘 쌓아놓은 뒤 아무 말 없이, 작별 인사도 없이 각자 목을 젖혀 준비해놓은 비상을 삼킨 뒤 구덩이로 들어가 누웠다."
최근 국내 번역 출간된 중국 소설가 팡팡(方方·66)의 장편소설 '연매장'(문학동네)(원제 '軟埋') 줄거리다.
제목 '연매장'은 관 없이 땅에 묻히는 매장 방식으로, 원한이 많아 환생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선택한다고 전해진다. 이 같은 매장 방식은 환생 없는 죽음처럼 과거를 완전히 단절하고자 하는 인물들의 선택을 보여줌으로써 중국 토지개혁으로 인해 개인의 존엄성이 말살당한 비극을 강조한다.
감당하기 힘든 괴로움을 망각하려는 모습은 죽은 가족들뿐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의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딩쯔타오를 치료한 군의관 우자밍은 딩쯔타오와 결혼해 부부가 되는데, 우자밍 역시 토지 개혁을 피해 지주 계급이었던 과거를 숨기고 평생 가짜 신분으로 살아온 인물이다. 우자밍은 딩쯔타오가 기억을 떠올리려다가 괴로워하자 "어쩌면 완전히 잊는 게 최선일지 모른다"고 다독인다.
딩쯔타오와 우자밍의 아들인 칭린은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고 어머니가 노년에 이른 뒤에야 부모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되지만, 아버지의 은폐와 어머니의 망각이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음을 깨닫고 평생 이 일을 들추지 않기로 한다.
팡팡은 '작가의 말'에서 "사람이 죽은 뒤 관이라는 보호막 없이 곧장 흙에 묻히는 것이 연매장"이라며 "살아 있는 사람이 과거를 단호하게 끊어내고, 이를 봉인하거나 내버린 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기억을 거부하는 것도 시간에 연매장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매장'은 비교적 긴 분량임에도 서사 위주로 빠르게 전개되고 끊임없이 새로운 사연이 밝혀져 속도감 있게 읽힌다. 간결하고 정돈된 문장으로 딩쯔타오의 뒤틀린 기억과 복잡한 감정을 표현해 눈길을 끈다.
이 책은 "충실하고 중후하며 깊은 여운을 남기는 현실주의적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2017년 중국 루야오문학상을 받았지만, 중국 토지개혁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중국 내에서 금서로 지정됐다.
팡팡은 성역 없는 글쓰기를 지향하는 소설가로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봉쇄된 우한의 참상을 담은 에세이 '우한일기'를 써 그해 BBC가 선정한 '올해의 여성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우한일기'를 쓴 여파로 중국작가협회 지도부에서 배제됐다.
문현선 옮김. 4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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