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강현민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약품 관세 정책이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고 있다. 수차례 의약품에 대한 품목별 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도, 약가 인하를 위한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는 등 모순된 행보다. 의약품 관세 부과에 대한 향후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19일 한국바이오협회 등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인을 최우선으로 한 약가 인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번 조치는 바이오시밀러·제네릭 등 복제약의 경쟁 촉진,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제도를 통한 약가 협상 강화 등이 핵심 내용이다. 가격 인하를 위한 처방약 수입 확대, PBM(처방약급여관리자)의 수수료 공개 의무화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바이오시밀러는 오리지널 의약품의 독점 체제를 무너뜨리고 약가 인하를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셀트리온, 삼성바이오에피스, 동아에스티 등이 미국에 바이오시밀러 제품을 유통하고 있는 만큼 매출 확대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는 수입 의약품에 대한 관세 부과를 추진 중이어서, 정책의 방향성이 서로 충돌하는 모습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1기부터 일관되게 약값 인하를 주장해왔지만, 최근 보편관세 조치를 보면 어떤 방향으로든 예단하기 어렵다”며 “최악의 경우 약값 상승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는 품목별 관세 부과 전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사전조사에 착수했다. 16일, 미국 상무부는 연방 관보를 통해 의약품 및 의약품 원료 수입에 대한 섹션 232 국가 안보 조사에 대해 공개 의견을 요청했는데, 조사 문항을 보면 관세 부과 전 사전조사 성격이 짙다. 문항 일부를 보면 ‘외국 정부 보조금과 약탈적 무역 관행이 미국 의약품 산업의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 등과 같은 관세부과에 대한 노골적 의지가 드러나 있다.
이처럼 트럼프 정부의 정책이 양면성을 띠는 가운데 글로벌 제약사들은 미국 내 생산기지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라이 릴리는 270억 달러, 존슨앤드존슨은 55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통해 리쇼어링(제조기지 본국 회귀)을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의약품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바이오시밀러처럼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품목은 관세 부과로 시장 입지가 약화될 수 있어, 약가 인하 정책과의 모순이 발생한다. 업계 관계자는 “관세로 약값이 오르면 환자의 접근성이 낮아지고, 결국 약가 인하라는 정책 목표와 충돌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의약품 관세 부과에 대한 미국 내 여론도 부정적이라 트럼프 행정부 행보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존슨앤드존슨의 호아킨 두아토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의약품 관세가 공급망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세제 혜택이 미국 의약품 및 의료기기 제조 능력을 높이는 데 더 효과적”이라며 정책 전환을 촉구했다.
미국바이오협회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90% 이상이 관세 부과 시 공급망 차질과 제조 비용 급증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항암제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등 고가 의약품의 경우, 가격 인상이나 품귀 현상이 발생할 경우 환자들의 반발이 정국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관계자는 “미국의 정책 방향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어 현재로선 뚜렷한 전망을 내놓기 어렵다”며 “기업들은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고 다각적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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