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이 6년의 임기를 마치고 헌법재판소를 떠났다. 이들은 퇴임사를 통해 헌재 결정에 대한 존중, 헌법 준수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사회 통합과 민주 질서 유지를 위한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재조명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포함해 여러 주요 사건을 다뤘던 이들 재판관의 퇴임은 향후 헌재 운영과 정치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18일 서울 종로구 헌재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문형배 권한대행은 “견제와 균형에 바탕한 헌법의 길은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존중으로 더욱 굳건해질 것”이라며 국민과 헌법기관 모두가 헌재 결정을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헌재의 결정에 대한 학문적 비판은 허용되어야 하지만, 특정 재판관을 향한 대인논증 같은 비난은 지양돼야 한다”며, 최근 탄핵심판 이후 불거진 재판부에 대한 이념공세를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문 권한대행은 또한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헌재의 역할을 재조명했다. “대통령과 국회 사이의 갈등이 격화될 경우 헌법적 해결 장치를 갖춘 대한민국은 헌재의 결정을 통해 교착상태를 풀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며, 헌재의 위상을 강조했다.
그는 최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재판장으로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인물로, 사건을 4개월간 이끌며 결정까지 도출한 바 있다.
또한 그는 재판관 구성의 다양성과 대화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재판관 구성은 다양해야 하며, 헌법 실무 경험이 풍부한 헌법연구관이나 교수가 헌재에 진출할 수 있는 제도적 길이 열려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재판관 간, 재판부와 연구부 간, 과거와 현재의 재판관 간 더 깊은 대화가 필요하다”며, 헌재 내 협업 구조의 발전을 제언했다.
이미선 재판관 역시 “국가기관이 헌법을 준수하지 않고 이를 무시한다면 우리 사회의 질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단언했다. 그는 “헌법재판관으로 근무하며 매 순간 마음속에 저울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고, 헌법 질서 수호와 국민 기본권 보장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려 노력했다”며 지난 6년간의 소회를 전했다.
이 재판관은 특히 수명 재판관으로서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의 사건 쟁점을 정리하며 주요 역할을 수행했으며, 평소 노동법 전문가로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이라는 점에서도 실무적 전문성을 높게 평가받았다. 헌법재판관 중 최연소 임명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두 재판관은 임기 중 여러 사회적으로 중대한 사건들을 심리했다.
대표적으로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에서 경찰의 직사살수 행위가 헌법에 어긋난다는 판단을 내렸으며,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전원일치로 위헌 결정을 했다.
또한 대통령 관저 인근 집회금지를 규정한 집시법에 대한 위헌 결정, 친족 간 재산범죄에 대해 처벌을 면제한 형법 조항의 헌법불합치 판단 등도 내렸다.
특히 정부가 2031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헌법불합치 판단을 내렸는데, 이는 아시아 국가 최초로 기후 관련 위헌성을 인정한 판결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판결들은 헌재의 존재 이유인 기본권 보호와 사회적 갈등 해결이라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이정표로 남게 됐다.
두 재판관의 퇴임으로 헌재는 당분간 7인 체제로 운영될 예정이다. 현재 헌재는 김형두 재판관이 선임 재판관으로서 권한대행을 이어받게 된다.
한편,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후임으로 지명했으나, 대통령 권한대행의 지명권 행사 자체가 헌법상 논란이 되어 헌재는 이 지명에 대한 가처분을 인용했고, 효력은 현재 정지된 상태다.
이로 인해 헌재의 정상적인 9인 체제 복원은 6월 대선 이후 새 대통령이 후임 재판관을 지명할 때까지 미뤄질 전망이다.
탄핵심판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이 잇따랐던 만큼, 공백기의 헌재 운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나오고 있다.
문형배 권한대행과 이미선 재판관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9년 4월 지명한 인물들로, 각각 부산지법, 서울지법, 대전고법,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에서 법관 경력을 쌓았다.
문 권한대행은 헌재에서 부장판사 출신으로는 드물게 헌재소장 권한대행까지 맡았고, 이 재판관은 노동전문 판사로서 헌재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감수성과 전문성을 함께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날 퇴임식은 두 사람의 가족, 고등학교 동창, 지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에서 진행됐으며, 헌재 직원들과 재판관들은 박수와 손인사로 퇴임자들을 배웅했다.
이들은 헌재에서의 역할을 내려놓고 시민의 위치로 돌아가지만, 그들이 헌법재판소에서 쌓아온 6년간의 결정과 철학은 앞으로의 사법 체계와 사회적 대화에 있어 긴 여운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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