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 미국의 대중국 고율 관세 부과 조치가 국내 산업계 전반에 우려를 낳고 있는 가운데, 배터리 업계는 되레 반사이익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북미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서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지난 10일(현지시간)부터 CATL, BYD 등 중국산 전기차 배터리에 대해 최대 145%의 고율 관세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앞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는 올해 1~2월 중국산 전기차 배터리 수입액이 약 2억89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약 24% 감소했다고 밝혔다. 특히 2월 한 달간 수입액은 전년 대비 58.8%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미 ESS 시장은 최근 몇 년간 전력 수요 증가와 신재생에너지 확산에 힘입어 급성장하고 있는 분야다. 태양광, 풍력 등으로 생산된 전력을 저장하고 필요할 때 공급하는 ESS는 일종의 전력 저장소이자 ‘전력 댐’ 역할을 한다. 여기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대와 고밀도 전력 사용량 증가까지 더해지며, ESS는 필수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북미 ESS용 배터리 수요는 약 78기가와트시(GWh) 규모였다. 이 가운데 약 87%에 해당하는 68GWh를 중국 업체들이 공급한 것으로 집계됐다. CATL, BYD, EVE 등 주요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가격과 생산 규모를 앞세워 북미 시장을 사실상 장악해왔다.
이러한 구도에 반전을 가져온 것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세 폭탄이다. 145%에 이르는 고율 관세가 실제로 부과될 경우, 중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급격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시장에선 이를 계기로 국내 기업들이 북미 ESS 시장에서 입지를 넓힐 수 있는 구조적 기회가 열렸다는 해석이다.
국내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국내 주요 배터리사들은 이미 북미 시장에 선제적으로 진출해 있으며, 일부는 현지 생산시설을 구축하거나 검토 중”이라며 “이번 관세 조치는 중국 업체들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동시에, 우리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이라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ESS가 전기차 수요 둔화에 따른 배터리 수요 위축을 일정 부분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에선 ESS 배터리를 전기차 배터리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을 극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돌파구로 보고 있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3대 배터리 기업들은 전기차 배터리 생산라인을 일부 전환해 ESS용 배터리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ESS는 전기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술·품질 기준이 덜 까다로운 데다, 단가가 높지 않더라도 대량 공급이 가능한 점에서 사업 다각화의 수단으로도 유리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북미 ESS 배터리 시장은 올해 약 97GWh 규모에서 2030년 179GWh로 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은 10%를 웃돌며, 배터리 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대중 무역장벽 조치로 인해 ESS 배터리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이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이 형성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ESS뿐만 아니라 로봇, 도심항공교통(UAM) 등 다양한 미래 산업이 확대되면서 고성능 배터리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꾸준히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미국이 무역장벽을 통해 중국산 제품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가 ESS 시장에서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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