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몇 년 전만 해도 주말 저녁, 영화관 앞엔 긴 줄이 늘어섰다. '최신 개봉작' 하나에 몇십만 관객이 몰렸고, 표 구하기 어려운 날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그 영화관엔 적막이 흐른다.
영화관의 스크린은 여전히 켜져 있지만, 관객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 현상은 단순한 일시적 침체가 아닌, 산업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반영하는 신호일 수 있다.
2024년 한국 영화 관객 수는 약 1억 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특히, 2024년 상반기에는 2023년보다 오히려 감소세로 돌아섰고, 2025년 들어서도 회복의 조짐은 미미하다. 이러한 통계는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관객의 소비 패턴 변화와 콘텐츠의 질적 저하, 그리고 산업의 대응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OTT의 부상, 관람 습관의 변화
코로나 팬데믹 동안 사람들은 집 안에서도 '좋은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넷플릭스, 디즈니+, 티빙 등 OTT 플랫폼은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며 관객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시간을 내고, 교통비를 쓰고, 팝콘까지 사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집콕 콘텐츠'의 편안함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극장은 점점 선택지가 아닌 '대체재'가 되어가고 있다.
반복되는 소재, 무너지는 기대
극장 영화의 내용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전형적인 범죄 액션, 남성 위주의 권력 서사, 스타 배우 중심의 캐스팅. 새로운 얼굴과 참신한 이야기를 원하는 관객의 기대와는 엇갈리는 선택이 계속된다. 특히, 수십억을 들인 대작들이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관객의 신뢰도 흔들렸다. '믿고 보는 배우', '기대작'이란 말이 더 이상 티켓 구매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
영화관, 경험을 제공해야 살아남는다
이제 영화관은 단순한 '상영 공간'을 넘어, '경험 공간'으로 진화해야 한다. 단순히 좋은 영화를 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관객들은 특별한 무언가를 원한다. 4DX, 스크린X 같은 몰입형 포맷, 감독과의 GV(관객과의 대화), 테마 기획전 등 '극장에서만 가능한 감각적 경험'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지나치게 높아진 티켓 가격도 걸림돌이다. OTT 한 달 구독료로 영화관에선 단 한 편밖에 볼 수 없다. 영화 1편 볼려면 티켓값만 15,000원을 훌쩍 넘어가고 팝콘 등 간식비, 주차료까지 포함하면 더 많은 지출이 발생한다. 영화관은 관객이 지불하는 만큼의 '가치'를 확실히 체감하게 만들어야 한다.
해결책은 결국, 콘텐츠와 다양성
결국 답은 '좋은 이야기'다. 관객은 여전히 감동받기를 원하고, 좋은 영화에는 언제든 다시 지갑을 연다. 하지만 그 '좋은 영화'는 다양성 속에서 나온다. 예측 가능한 공식에서 벗어나 젊은 창작자와 신선한 아이디어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다양한 장르, 여성 서사, 청춘 영화, 독립영화, 지방 배경의 로컬 콘텐츠 등 그동안 소외됐던 이야기들이 지금 관객에게 더 강한 울림을 줄지도 모른다.
지금의 침체는 영화 산업에 '위기'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변화의 기회'이기도 하다. 모든 위기는 기존의 틀을 돌아보고, 새 판을 짜야 할 시점을 알려준다. 극장 영화는 여전히 유효하다. 스크린 속 거대한 감정, 웅장한 사운드, 함께 숨죽이며 영화를 보는 그 공동체적 경험은 다른 어떤 매체로도 대체되지 않는다. 다만, 그 경험이 진정으로 특별하고 가치 있게 다가오기 위해선, 지금 당장 변화가 필요하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knewscor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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