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의 비범한 사람들] "'나는 정상'이라고 얘기할 때 가장 위험하다"···양극성 장애 디자이너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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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의 비범한 사람들] "'나는 정상'이라고 얘기할 때 가장 위험하다"···양극성 장애 디자이너의 한마디

여성경제신문 2025-04-17 18:30:00 신고

3줄요약
한국 사회는 정상성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 질병이나 장애는 물론 취향이 독특하거나 사회가 흔히 생각하는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 모두를 쉽사리 수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이 말하는 '정상'이 무엇인지, 모두가 '정상'에 포함될 수 있는지, '정상이 무조건 옳은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나와 다른 것들을 수용할수록 자신에게 가해지는 압박도 줄어든다. '비범한 사람'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 관해 탐구해본다. [편집자 주] 
'일상 정원'은 ADHD나 기분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문구를 만든다. 해당 브랜드의 창시자인 일상 정원사도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는 ADHD인이다. /본인 제공
'일상 정원'은 ADHD나 기분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문구를 만든다. 해당 브랜드의 창시자인 일상 정원사도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는 ADHD인이다. /본인 제공

"우울증 가진 사람들은 모두 게으르고 이기적이다"

어느 한 식당에서 누군가 식사를 하다 내뱉은 말이다. 어떤 사람은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은 관심 없이 그냥 넘길 수도 있는 발언이다. 그러나 해당 식당에는 이 말을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사람들이 단체로 식사하고 있었다. 마음 챙김을 위한 문구 브랜드 '일상 정원'의 디자이너인 일상정원사와 그 제품의 사용자들이었다.

'일상 정원'은 ADHD나 기분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문구를 만든다. 해당 브랜드의 창시자인 일상 정원사도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는 ADHD인이다. 그는 이때를 회상하며 "솔직히 속상했다"라고 회고했다.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발언을 한 사람은 식당에 실제 우울증 환자들이 있는 걸 알았어도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을까?' 

혐오 표현은 누군가를 괴롭히려는 악의적인 의도로 나오기도 하지만 무지에 의해서도 나온다. 자신이 혐오하는 대상이 가까운 곳에 실제로 있는 줄 몰라서,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게 와닿지 않아서 함부로 말을 뱉는 경우도 많다. 아마 우울증 환자들을 비난하던 식당 고객도 비슷한 예가 아니었을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번아웃', '불안장애', ADHD' 등 우울증이 아닌 다른 정신 질환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증가했다. 그러나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은 이런 병들을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고 이런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자신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과연 정말 그럴까? 일상 정원의 디자이너인 정원사의 대답은 '아니요'였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일상 정원은 좋아하는 프랑스의 속담
일상 정원은 좋아하는 프랑스의 속담 "정원에는 정원사가 심은 것보다 많은 것들이 자란다"라는 문장을 캐치프레이즈로 삼아 시작된 브랜드다. /본인 제공

ㅡ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한국에서 마음 챙김 기반 문구류를 제작하고 있는 일상 정원사다.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는 ADHD인이고 강아지 한 마리와 고양이 네 마리의 반려인이기도 하다."

ㅡ'일상 정원'은 어떤 브랜드인가? 일상 정원에서 추구하는 '마음 챙김'의 의미를 설명해달라.

"일상 정원은 좋아하는 프랑스의 속담 "정원에는 정원사가 심은 것보다 많은 것들이 자란다"라는 문장을 캐치프레이즈로 삼아 시작된 브랜드다. 2018년 라자르디니에로 시작해 지금은 일상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테라피북, 열매책, 써클북, 오로라카드, 퀘스트팩 등 기분장애, 성인 ADHD 등의 다양한 신경증 당사자분들이 질병과 자신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노트들을 제작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정답이 있는 것처럼 살아갈 때가 많다. 그러다 보면 어딘가 어긋나는 자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이런 부분을 마음 챙김 수준에서 보완할 수 있도록 돕는 문구류를 만드는 것이 일상 정원의 목표다."

ㅡ해당 브랜드를 만들게 된 이유는?

"처음부터 어떤 브랜드를 성장시키겠다는 뜻을 가지고 시작하지는 않았다. 강렬한 우울 삽화로 인해 외국 생활에 실패하고 돌아왔을 때 어떤 분이 개인용 다이어리 제작을 부탁했다. 그 작업을 하면서 자신을 위해서는 한 번도 무엇을 만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시작한 작업이 테라피북이었다. 

처음에는 최소 제작 수량을 소진할 수 있는 정도의 프로젝트였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테라피북에 관심을 가져주셨다. 디자인을 통해 생각의 방식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경험이 이 일을 계속하게 했다."

ㅡADHD나 기분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으로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은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어릴 때 ADHD라는 진단을 받지 못했다. 신경증과 관련된 역사는 18살 때부터 시작됐다. 거의 생애의 절반이 넘는 긴 시간을 신경증과 같이 보냈다. 

큰 자극 없는 생활을 유지하려고 일상을 많이 제한하고 있다. 늦게 잠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힘들고 하루 종일 자책하므로 취침 시간은 꼭 지킨다. 또 아무리 좋아하는 공연이나 재미있는 책이라도 경조증이나 우울 삽화를 불러일으킬 것 같으면 피해 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규칙을 지킨다'라고 표현했지만 종종 삶의 어떤 부분을 포기하고 있다는 감각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일상생활의 모든 부분이 사실 좀 어렵다. 지금은 많이 적응했지만 문득 내 두뇌가 가진 특성이나 기질 같은 것들이 자신을 막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1이나 3 정도의 자극도 나한테는 7이나 8 수준으로 다가오고 자신을 미워하고 세상을 왜곡된 방식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어 단순히 어떤 한 에피소드로 삶을 축약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것 같다."

일상정원사는
일상정원사는 "혐오자분들이 혐오 발언을 하실 때 들어보고 대화를 시도하는 편이다. 결국에는 설득하려면 대화하고 들어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본인 제공

ㅡADHD나 기분장애를 앓음으로써 받게 된 시선이나 차별이 있는가?

"서울에 있는 사찰에서 제품을 사용하시는 분들을 모시고 명상 체험 행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이후 식사를 하러 갔는데 식사 공간에 있던 다른 분이 '우울증 가진 사람들은 모두 게으르고 이기적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럴 때는 아주 속상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이 겪고 있는 게 아니면 신경증에 대해서 일부러 찾아보는 분들이 많지는 않다. 이런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시선에는 무지함이나 무신경함도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혐오자분들이 혐오 발언을 하실 때 들어보고 대화를 시도하는 편이다. 결국에는 설득하려면 대화하고 들어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ㅡ오랜 기간 동안 증상을 앓아왔던 것으로 안다. 그동안 정신 질환에 관한 사회적 시선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고 보는지.

"제가 진단받던 시기와 비교하면 ADHD라든가 불안장애‧정신장애‧번아웃 등 다양한 질환이 언급된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언급하는 정신질환의 종류가 더 다양해졌다는 것은 확실하다. 다만 누군가 실제로 겪고 있는 이런 신경적 특성이 미화되거나 아니면 설득력이 있는 부분만 가져다가 쓰고 싶은 매력으로 소비되는 경향도 있다. 실제 앓고 있는 사람으로서 조금 곤란한 느낌을 받을 때도 많다."

일상 정원의 제품은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챙김으로써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제품들이다. 모두 석사 이상의 임상 심리 상담사분들의 검증을 받고 만들어졌다. /본인 제공
일상 정원의 제품은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챙김으로써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제품들이다. 모두 석사 이상의 임상 심리 상담사분들의 검증을 받고 만들어졌다. /본인 제공

ㅡ스스로가 앓고 있는 특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타고나기를 예민한 사람으로 태어났다. 이런 예민함이 장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한다. 남이 겪는 아픔에 쉽게 공감하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쉽게 지치고 사람들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질환이나 신경적 특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과 병을 긍정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울증이야', '나는 ADHD야'라고 긍정하는 것과 '이건 나의 특성이기 때문에 고치고 싶지가 않아'라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얘기다. 어느 날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나타나 나에게 '네 전두엽의 기능을 다시 원복해 줄 테니까 네가 가진 어떤 불편한 점들을 나한테 줄래'라고 얘기하면 당연히 응할 것이다.

누구나 타고난 특성이 있지만 고칠 수 있다면 고치고 싶은 부분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걸 삭제하거나 수정했을 때 더 이상 나다울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ㅡADHD나 기분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을 사회가 어떤 식으로 바라보면 좋을지 의견을 말해달라.

"신경 다양인을 타자가 아닌 전체적인 우리 사회의 일부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신경 다양성이라고 하면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런 특성을 가지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사실 누구나 조그만 불행 때문에 우울증에 걸릴 수 있고 우울증에 오랫동안 빠져나오지 못할 때 ADHD적 특성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런 만큼 질병에 대한 악마화‧밈화는 개인들이 질병 초기에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같다.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고 신경 다양인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저버리지 않을 때 서로가 지는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는 걸 이해하면 좋겠다.

사회 전체에 팽배한 정상성 신화를 개인이 깨부수기는 좀 어렵다. 그래서 정부가 어느 정도 개입해서 재사회화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의 올바른 조명도 필요하다. 

'현대사회에서 '나는 정상인'이라고 얘기하는 순간이 정신적으로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농담을 자주 한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못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누구나 다 쉽게 무너질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ㅡ앞으로 일상 정원 브랜드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따로 더 만들고 싶은 제품은?

"최종적으로는 폭력에 반대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학교 폭력, 가정폭력 아니면 어떤 혐오나 차별로부터 받은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의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게 가장 큰 목표다."

일상 정원의 제품은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챙김으로써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제품들이다. 모두 석사 이상의 임상 심리 상담사분들의 검증을 받고 만들어졌다. 나를 돌아보면 스스로가 마냥 완벽하지 않은 존재라는 걸 알게 된다. 안정과 관용은 이를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하는 법이다. 

여성경제신문 김민 기자 kbgi001@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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