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에게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는 첫 번째 고비다. 예식장을 정하고 웨딩플래너와 상담을 시작하면서 맞닥뜨리는 건 복잡한 패키지 구조와 세분화된 추가금,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을 알 수 없는’ 불투명한 시스템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11월 스드메 시장의 불공정 관행을 바로잡겠다며 관계 부처 합동으로 ‘결혼 서비스 발전 지원 방안’을 내놨다. 가격 자율 공개, 결혼서비스법 제정, 표준 계약서 도입, 광고 감시, 핫라인 구축 등 다섯 가지 대책이 제시됐지만, 현실은 그대로다. 5개월이 흐른 지금 실효성 있는 변화는 단 한 가지, 공정위가 마련한 표준계약서뿐이다. 나머지는 구호에 머물렀다.
대표적인 실패 사례는 ‘스드메 가격 자율 공개’다. 정부는 올해 1월부터 한국소비자원의 ‘참가격’ 사이트를 통해 업체들의 가격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4월 현재 등록된 업체는 10곳에 불과하다. 스드메 주요 업체 200여 곳 가운데 고작 5%다. 자율 공개라는 한계 때문이다. 공개된 가격 또한 세부 항목별 리스트 수준으로, 소비자가 실질적으로 비교하거나 예산을 짜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다.
‘깜깜이 구조’는 비용 착취로 이어진다. 스드메 패키지를 계약해도 실제 어떤 드레스를 선택하느냐, 어느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느냐에 따라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의 추가금이 붙는다. 한 번 계약하고 나면 중도 취소나 변경이 어렵고 서비스 이용 중간에도 ‘옵션비’, ‘업그레이드비’, ‘이모님 비용’, ‘헤어 변형비’, ‘컨펌비’ 같은 낯선 명목의 비용이 따라붙는다. 대부분은 계약 당시 설명조차 듣지 못했던 항목들이다.
공정위는 최근 ‘국내 1위’, ‘최다 제휴’ 등 객관적 근거 없이 허위·과장 광고를 해온 웨딩업체 3곳을 적발했다. 그러나 위반 정도가 경미하고 해당 문구를 자진 삭제했다는 이유로 과징금 대신 경고에 그쳤다. ‘신뢰’와 ‘가성비’라는 문구에 이끌려 계약을 체결했던 예비부부들의 허탈함만 남았다.
실제로 스드메 비용은 최근 몇 년 새 가파르게 올랐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 따르면 2020년 235만 원이던 스드메 평균 비용은 올해 441만 원으로 87% 상승했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의 6배를 넘는다. 한국소비자원이 분석한 서울지역 스드메 패키지의 평균 추가금은 173만 원, 최대 1300만 원에 달했다. 패키지 비용의 절반 이상이 ‘추가금’인 셈이다.
결혼은 평생 한 번이라는 인식은 업체들에게는 ‘가격 저항 없는 소비자’로 비친다. 인하대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는 “기본가격 대비 일정 비율 이상 추가금을 못 받도록 제한하거나, 가격 표시제를 의무화하는 방식으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결혼시장 전반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며 ‘결혼서비스법’ 입법에도 나섰다. 기획재정부와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실은 2월 해당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결혼식장 대여업과 웨딩플래너 등도 반드시 지자체에 사업 신고를 하도록 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업체는 소비자 보상을 위한 보험 또는 보증금을 의무적으로 예치하게 한다. 그러나 법안 통과까진 갈 길이 멀다.
공정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현재 전국 2000개 결혼서비스 업체에 대한 가격 실태조사를 마친 상태”라며 “결혼 비용 전반의 구조 개선을 위해 후속 정책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정부의 대책은 대부분 ‘권고’ 수준에 머물고, 현장에선 “강제성이 없으니 달라질 게 없다”는 반응이 우세하다. 정책이 미치지 못하는 틈새에서, 예비부부들은 여전히 ‘눈 가리고 계약서에 도장 찍는’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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