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최근 용인에서 50대 남성이 부동산 분양 사업 실패를 비관해 노부모와 아내, 자녀 등 일가족 5명을 살해한 사건이 일어난 계기로 배우자와 자녀를 대상으로 한 살인도 존속살해처럼 가중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경기 용인서부경찰서는 17일 살인 및 존속살해 혐의를 받는 A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잘실질심사)이 이날 오후 2시 30분 수원지법에서 진행된다고 밝혔다.
전날 용인서부경찰서는 살인, 존속살해 혐의를 받는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씨는 지난 15일 오전 경기 용인시 수지구 소재 한 아파트에서 80대 부모와 50대 배우자, 20대 자녀, 10대 자녀 등 자신의 가족 5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수면제를 가족들에게 먹여 잠들게 한 뒤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범행 직후 승용차를 통해 광주광역시에 있는 또 다른 거주지로 이동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를 했다.
경찰은 피해자 유족의 신고를 받고 같은 날 오전 10시경 현장에 출동했다. 현장에서 경찰은 타살 흔적을 발견했고 현장에 없는 거주자 A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이후 광주동부경찰서에 공조 요청해 오전 11시 10분경 A씨를 붙잡았다.
검거 당시 A씨는 약물을 복용한 상태로 광주시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찰은 A씨가 회복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오후 3시경 긴급체포한 뒤 오후 8시경 용인서부경찰서로 압송해 조사를 진행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A씨는 사업 실패로 인한 과다 채무와 관련 민사, 형사 사건이 들어오는 상황을 비관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취지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더불어 그는 과도한 채무를 가족들이 떠안게 할 수 없었다고 언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광주광역시에서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사업을 이어오다가 여러 건의 고소를 당한 상태였다. 고소인들이 주장하는 피해 규모는 10억여원이다.
부모를 살해한 행위는 존속살해죄로, 배우자와 두 자녀에 대한 살인은 일반 살인죄로 각각 법적 판단을 받게 된다. 현행 형법상 부모를 살해한 경우에는 존속살해죄가 적용돼 7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사형에 처해진다. 이는 일반 살인죄(5년 이상 징역 또는 무기·사형) 보다 가중 처벌된다. 반면 배우자나 자녀를 살해한 경우에는 이를 별도로 가중처벌하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같은 ‘용인 일가족 살해 사건’처럼 배우자와 자녀를 포함한 가족 구성원을 살해하는 중대 범죄가 반복되고 있지만 존속살해 범죄와 달리 가중처벌되고 있지 않아 이에 대한 법·형벌적 대응의 형평성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살인과 같은 중범죄는 가까운 사이, 특히 가족 간에서도 빈번히 일어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조승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살인 사건 피해자 유형은 그 대상이 배우자인 경우가 (55건·19.0%)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자녀(49건·16.9%), 부모(43건·14.8%), 애인(29건·10.0%)이 뒤따랐다.
국회에서는 배우자와 직계비속 살인을 가중처벌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 지속 발의된 바 있다. 2022년 7월 국민의힘 이태규 의원이 미성년자인 비속을 살해할 시 존속살해와 동일하게 가중처벌하는 것이 골자인 형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외에도 21대 국회에서는 자녀 살해를 무겁게 처벌하는 형법 개정안이 5건 발의됐지만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당시 법원행정처와 법무부 측은 존속살해죄에 관한 위헌 논쟁이 재연될 수 있는 데 이어 직계혈족에 대한 범죄는 기본적으로 양형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며 개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22대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지난 2월 존속살해죄를 명시한 현행 형법 250조 2항에 배우자 및 비속살해죄 조항을 신설해 가중처벌해야 한다는 형법 개정안을 냈다. 남 의원은 입법 배경으로 존속살해와 같이 일반 살인죄보다 가중처벌해 반인륜적 범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남대 경찰학과 이도선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존속살해와 일반 살인 간 형량 차이에 대해 “유교적 가치관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부모를 죽이는 것은 특히 더 중대한 죄’라는 문화적 인식이 법에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존속살해죄가 형벌의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판단된다면 이를 폐지하고 모든 살인을 양형기준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반대로 존속살해죄를 유지할 것이라면 형평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녀나 배우자에 대한 살인도 가중처벌할 수 있는 법 조항을 신설해 헌법상 평등 원칙을 위배하지 않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나 배우자를 대상으로 한 살인 역시 존속살해만큼이나 중대한 범죄라는 것”이라며 “해당 문제는 국회와 법조계 차원에서 심도 있는 논의와 제도적 검토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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