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부터 '3천58명' 유력 검토…증원시 갈등악화·대안부재에 '고육지책'
의대 학장·총장단 잇단 건의 '결정타'…"트리플링 피해야" 현실론 작용
'원칙훼손·백기투항' 지적도…교육부 "밀린 게 아니라 물러난 것" 주장
(세종=연합뉴스) 고상민 기자 = 정부가 17일 의대생들의 집단 수업 거부에도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 3천58명 조정안을 그대로 확정한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당장은 '수업 보이콧'을 하고 있지만 의대생 전원이 일단 등록은 해둔 만큼 어렵사리 트인 교육 정상화의 물꼬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부는 물론 대학 내에서도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학생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의대 정원을 증원된 5천58명으로 유지할 것이라던 정부의 경고는 어차피 실행하기 어려운 '플랜B'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 1월부터 '3천58명 동결' 가닥…'등록→투쟁'에 스텝 꼬인 정부
정부는 이미 새해 초부터 내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이전 규모인 3천58명으로 되돌리는 방안을 각 대학과 유력하게 검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5천58명이라는 정원은 건드리지 않되 내년도에만 모집인원을 줄이는 방식으로 일단 휴학생들의 복귀를 유도하자는 판단이었다.
교육부는 의대 학사를 전담하는 의대국을 1월부로 신설했고, 의대국은 전국 40개 의대와 상시 소통하는 전담반까지 꾸리며 교육 정상화 논의에 속도를 올렸다.
협의 끝 결과물은 의대생 '전원 복귀'를 조건으로 한 모집인원 3천58명 조정안이었다. 3천58명은 의대 증원 이전 규모다.
지난달 7일 정부는 이런 내용의 의대 교육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내년 모집인원을 3천58명으로 복귀하자는 의대 학장과 총장들의 건의를 수용하는 방식이었다.
아울러 의대생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학칙대로 제적·유급 조치를 하겠다는 경고와 함께 의대 정원은 기존대로 5천58명으로 유지하겠다는 엄포도 곁들였다.
정부 바람대로 강경 일변도였던 의대생들의 '미등록 투쟁' 방식에 변화 조짐이 일었다. 사실상 전국 40개 의대 학생 모두 등록·복학 신청에 나서면서 의대 교육 정상화 기대감을 부풀렸다.
의료계와 교육계에선 이때부터 조건부이긴 했지만 정부의 '3천58명 동결' 약속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막상 개강 후 대학별 평균 수업 참여율이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우려했던 수업 거부가 현실화했지만, 모집인원 동결안을 무효로 하기엔 시기적으로 늦은 데다 다른 대안도 마땅치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3천58명 안을 무효로 하면 그나마 등록한 학생들이 더 강하게 반발하면서 의정 대치 전선이 한층 격화할 것이란 우려가 동결 대세론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의대 관계자는 "일단 학생 모두 학교에 돌아왔는데 당장 수업에 불참한다고 3천58명 안을 없던 일로 할 순 없는 노릇"이라며 "수업 거부 학생들을 학칙에 따라 처리하는 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실질적 복귀가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3천58명 동결'을 확정한 것을 두고 정부 스스로 원칙을 어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꼼수 복귀'한 의대생들에게 백기 투항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 관계자는 "정상 수업이 이뤄지면 3천58명으로 정하겠다는 약속을 못 지킨 것은 맞다"면서도 "원칙 훼손이라는 지적엔 동의할 수 없다. 강성 학생들에게 밀린 게 아니라 정부가 물러난 것이 맞는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모집인원 조정으로 증원을 기대했던 국민에게 의료개혁이 후퇴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끼쳐 송구하다"며 "의대 증원은 여전히 필요한 것이지만, 이는 양질의 교육으로 의료인이 제대로 양성될 때 실현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의대 학장·총장단 건의 '결정타'…"트리플링 막아야"
정부가 고심 끝에 모집인원 3천58명을 결단한 배경에는 이번에도 의대 학장·총장단의 강한 건의가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의대 증원 정책을 강행한 정부를 향한 의대생들의 깊은 불신이 여전한 상황에서 정부가 학장·총장단의 합의된 의견을 수용하는 방식이 그나마 반발을 최소화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달 7일 정부가 조건부 모집인원 동결안을 발표하는 브리핑장에도 의대 학장·총장단 대표가 함께 나와 학생 복귀를 호소한 바 있다.
실제로 교육부는 각 의대와 교육 정상화 방안을 논의할 때도 대학 측 제안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24·25학번 분리수업 방안 역시 의대 학장들의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대협회)가 제시한 아이디어였다.
이르면 이달 초로 예상됐던 내년도 모집인원 발표 시점을 차일피일 미뤄온 정부를 압박한 것도 의대 학장·총장단이었다.
의대가 있는 40개 대학 총장 모임인 '의과대학 선진화를 위한 총장협의회'(의총협)은 전날 긴급회의를 열어 모집인원 3천58명 안을 확정하고 교육부에 건의했다.
KAMC도 이틀 전 전국 의대생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학생들의 역할은 수업에 참여해 정부가 2026년도 모집정원 3천58명을 빠르게 선언하도록 해야 한다"며 정부의 조속한 발표를 간접적으로 압박했다.
의대 학장과 총장들이 다 같이 3천58명 안의 조속한 확정을 요구한 것은 수업 거부가 지속되면 대규모 유급으로 내년엔 3개(24·25·26) 학번이 1학년에 '트리플'로 겹치는 사태가 발생한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교육계에선 1만명에 달하는 이들 3개 학번이 한 학년에 겹치면 의대 교육은 사실상 전면 중단될 가능성이 작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gorious@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