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레인지에 돌린 햇반을 열면 낯선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밥알 사이마다 구멍이 송송 뚫려 있다. 누가 한 숟가락 떠먹고 다시 덮은 듯한 이 모습, 당황할 필요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구멍은 햇반이 맛있는 이유 중 하나다. 단순한 즉석밥이 아니다. 밥맛을 높이기 위한 치밀한 공정과 과학이 숨어 있다.
햇반, 왜 구멍이 생길까
햇반은 쌀에 물만 붓고 데우는 구조가 아니다. 쌀을 용기에 담은 뒤 물을 붓기 전, 다짐판으로 눌러주는 과정을 거친다. 밥을 단단히 눌러야 열이 고르게 전달된다. 이때 밥알 사이로 구멍이 생긴다.
이 구멍은 단순한 흔적이 아니다. 열이 퍼질 수 있는 통로다. 쌀 사이에 틈이 많을수록 열 전달이 원활하다. 밥맛을 좌우하는 호화가 이 과정에서 빠르게 진행된다. 호화는 쌀 전분이 열과 수분을 만나면서 부드러워지는 반응이다. 이걸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구멍이 필요한 셈이다.
온도와 도정, 맛을 만드는 두 축
밥맛은 온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냄비밥은 99도 정도에서 익는다. 압력밥솥은 117도까지 올라간다. 햇반은 이보다 더 높은 140도 이상의 환경에서 조리된다. 쌀 속 전분이 깊숙이 익고, 식감은 쫀득해진다. 전자레인지에 짧게 돌리는 것만으로도 갓 지은 밥처럼 맛이 살아나는 이유다.
도정 시점도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쓰는 백미는 도정된 지 시간이 지난 상태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분은 줄고, 산화가 진행돼 밥맛이 떨어진다. 햇반은 다르다. 현미 상태로 입고된 쌀을 공장에서 당일 도정해 바로 조리한다. 수분이 살아 있고, 밥맛도 다르다.
즉석밥은 대체제가 아니다. 한 번에 소량, 1인분씩 조리되기 때문에 열 전달이 균일하다. 반면 대량으로 짓는 밥은 과하거나 덜 익은 부분이 생길 수 있다. 돌솥밥이 맛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햇반은 이 구조를 그대로 갖췄다.
즉석밥은 100% 조리된 상태다. 전자레인지는 느슨해진 전분 구조를 다시 부드럽게 되돌리는 역할을 한다. 찬밥처럼 수분이 증발한 상태가 아니다. 일정한 수분이 유지돼 있어 데우기만 하면 원래 식감이 되살아난다.
즉석밥, 왜 데워야 더 맛있을까
즉석밥은 덜 익은 밥이 아니다. 데우지 않아도 먹을 수 있다. 햇반은 고온 고압으로 완전히 조리된 뒤 무균 상태로 밀봉된다. 일반 냄비밥보다도 더 높은 온도에서 익었기 때문에 조리는 완료된 상태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분이 굳고 밥이 딱딱해질 수 있다. 이때 전자레인지에 열을 가하면 다시 부드러워진다.
밥은 시간이 흐르면서 수분을 잃고 입자 구조가 조여든다. 이걸 ‘노화’라고 한다. 데우면 전분 구조가 풀리고 수분이 다시 스며든다. ‘재호화’가 일어나면서 부드러운 밥 상태로 돌아온다. 즉석밥은 이 재호화가 가능한 구조다. 짧게 돌리기만 해도 처음처럼 부드럽게 되살아난다.
냉장 보관하면 노화 속도가 더 빨라진다. 0도에서 5도 사이 온도에서는 전분이 급격히 수축되며 밥이 더 딱딱해진다. 실온에 보관할 때보다 더 빨리 맛이 떨어진다. 냉장고에 보관했다면 전자레인지에 평소보다 조금 더 돌려야 한다.
햇반, 안전하게 데우고 제대로 보관하려면
햇반 용기는 전자레인지용으로 설계돼 있다. 열에 강한 PP 소재로 만들어졌고, 고온에서도 변형이나 유해물질 걱정이 없다. 끓는 물 조리도 가능하지만,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전자레인지 조리다. 700W 기준 2분, 1000W 기준 1분 30초면 충분하다.
보관은 실온이 기본이다. 직사광선을 피하고 서늘한 곳에 두는 게 좋다. 냉장 보관은 추천되지 않는다. 개봉 후에는 빠르게 먹는 게 안전하다. 포장 필름에 물방울이 맺혀 있는 건 수증기가 응결된 것이며 품질에는 문제가 없다.
햇반 하나에 쌀, 물, 열, 시간, 보관까지 모든 과정이 치밀하게 설계돼 있다. 눈앞에 놓인 밥 한 공기를 편하게 먹는 동안, 수많은 기술이 그 뒤에서 작동하고 있다. 송송 뚫린 구멍 하나에도 과학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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