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가 '테 데움' 국내 초연…드보르자크·엘가·브루크너 비교감상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합창음악 애호가와 이 분야 종사자를 제외한 일반 청중에게 합창음악 연주회를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포장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합창음악의 레퍼토리가 관현악곡이나 오페라 장르보다 상대적으로 폭이 좁은 편이고, 교회음악이 큰 비중을 차지해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지 않은 감상자들에게 진입장벽이 놓일 수 있어서다.
하지만 지난 15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국립합창단 정기연주회는 달랐다.
같은 교회음악이라 해도 드보르자크, 엘가, 브루크너가 19세기 말 비슷한 시기에 작곡한 '테 데움'(주 찬미가)을 하나로 묶어 '낭만주의 거장의 합창음악'이란 제목을 붙인 국립합창단의 기획은 일단 일반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서양 음악사의 수많은 작곡가가 작곡한 '테 데움' 중에서도 각별히 높이 평가 받는 브루크너의 '테 데움'이 우선 시선을 끌었고, 들을 기회가 별로 없는 드보르자크와 엘가의 '테 데움'까지 덧붙여져 더욱 흥미와 호기심을 유발했다.
더구나 에드워드 엘가의 '테 데움과 베네딕투스'의 경우는 이번 공연이 국내 초연이었다.
팀파니의 화려하고 공격적인 연타로 드보르자크 '테 데움'의 1곡 '주님을 찬미하나이다'가 시작되자 청중은 곧장 음악에 몰입했다.
드보르자크를 적극 후원했던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가 말했듯이, 이 '테 데움'은 현실에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에게 억압과 차별을 당했던 "보헤미아인들이 빈과 베를린을 쳐부수고 이를 축하하는" 음악적 승리였다.
연주회가 끝난 후 이날 이 곡을 처음 들었다고 밝힌 관객들은 "우리 정서에도 동질적인 호소력을 갖는 보헤미아의 민속 선율과 장단에 놀라고 감동했다"는 소감을 들려주기도 했다.
음색과 강약과 리듬을 수시로 바꾸는 이 복잡한 음악을 국립합창단 단장 겸 예술감독 민인기가 지휘한 국립합창단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디테일을 살려가며 세심하게 구현했다.
독창자로 참여한 소프라노 김방술의 서정적인 '상투스'(거룩하시다)와 그에 따르는 목관악기의 매혹적인 연주는 폭격에 가까운 도입부 분위기를 180도로 전환했다.
2곡 '영광의 왕이신 주님'에서도 금관의 요란한 팡파르 뒤에 바리톤 독창자 안대현이 깊이 있고 유려한 음색으로 분위기를 전환했고, 이어지는 여성합창은 꿈결처럼 아늑하게 녹아들었다.
마지막 4곡의 어려운 피날레 리듬을 무사히 마무리한 뒤 엘가의 '테 데움과 베네딕투스'가 시작되었다. 오르가니스트 양하영은 무대 위에 놓인 이동형 콘솔에서 연주했고, 은은하면서도 장엄하게 울리는 파이프오르간의 음색은 이 작품의 절제되고 균형감 있는 화성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위층에서 연주하든 무대 위에서 연주하든 롯데콘서트홀 정면 벽에 설치된 파이프를 울려 오르간 소리를 내므로 파이프를 가리는 자막 스크린을 설치할 수 없었는데, 공연 전에 미리 내용과 가사를 예습하고 온 관객도 많았지만 그렇지 못한 관객들은 자막이 없어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국내 초연인 만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호흡이 완벽하게 무르익진 않았지만 이처럼 소중한 작품을 실연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관객이 가장 기대했을 브루크너의 '테 데움' 연주가 시작되었다. 테너 국윤종, 소프라노 임세경, 메조소프라노 이아경, 바리톤 양준모로 이뤄진 독창자 네 명이 앞선 드보르자크 연주에서와 마찬가지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테너의 선창이 특히 두드러지는 이 작품에서 국윤종은 매끄럽고 강렬한 고음과 에너지가 넘치는 가창으로 악곡에 빛을 더했다. 선창에 따르는 다른 독창자들도 모두 탁월한 기량을 보여줬고, 금관악기의 매끄러운 연주와 김민균 악장의 서정적인 바이올린 솔로도 인상적이었다.
공연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50명에 가까운 국립합창단 청년교육단원들이 무대 상단에 위치해 전 공연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정단원들과 함께 100여명의 대규모 합창단이 구성된 까닭에 평소 국립합창단의 정교하고 선명한 하모니가 다소 약화한 부분도 들리긴 했지만, 차세대 양성을 위한 의미 있는 참여였다.
이날 무대에서는 소프라노 장영숙, 알토 김미경 단원의 정년퇴임을 축하하며 긴 세월의 노고에 감사하는 훈훈한 장면도 펼쳐졌다. 앙코르로 연주한 엘가의 '사랑의 인사' 합창 버전에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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