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전기차가 급속도로 보급되는 가운데, 보험 체계는 여전히 전환기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비자들은 친환경성과 경제성을 기대하며 전기차를 선택하지만, 사고 발생 시 고가 배터리 수리비 부담과 복잡한 보장 구조로 인해 예기치 않은 비용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차량과 배터리를 분리해 소유하는 ‘배터리 구독 서비스(BaaS)’의 등장으로 보험 설계 자체를 다시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1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약 51만5000대로, 2020년 대비 4배 이상 증가했다. 전기차는 더 이상 ‘새로운 시도’가 아닌 주요 교통수단으로 자리잡았지만, 보험 체계는 여전히 내연기관 차량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는 평가다.
배터리 구독 모델과 사고 리스크, 보험 체계의 이중 과제
전기차 보험의 핵심 이슈는 단연 배터리로 볼 수 있다. 주로 차량 하부에 장착된 리튬이온 배터리는 차량 가격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고가 부품으로, 충격에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사고 발생 시 손상이 경미하더라도 진단이 어렵고, 실제 수리보다는 전체 교체가 일반적이다.
보험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전기차 배터리 수리 현황과 과제 리포트’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기차 배터리 교환 사고의 83%는 바닥 물체에 의한 단독 사고였으며, 대부분이 전체 교체로 이어졌다. 평균 교체 비용은 2000만원에 달해 보험 보상 체계에 큰 부담이 된다.
아울러 배터리 구독 서비스의 확산은 보험 구조에 또 다른 도전 과제가 되는 상황이다. BaaS는 배터리를 차량에서 분리해 제조사나 렌털사가 소유하고, 소비자는 월 이용료를 지불하는 방식이다. 초기 구매 비용을 낮추고 배터리 관리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인해 중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차츰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
문제는 보험 체계가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자동차보험은 차량 전체를 단일 소유 자산으로 전제하고 요율을 산정하지만, BaaS 모델에서는 배터리 소유권이 운전자에게 없기에 보상 책임의 구조가 복잡해질 수 있다. 사고로 배터리가 손상됐을 때 보험사가 보상해야 할 범위가 명확하지 않고, 이는 보험료 산정과 약관 구성에 모두 영향을 미친다.
정비 인프라 문제도 여전히 걸림돌이다. 전기차 수리가 가능한 정비소는 전체의 5% 미만이며, 배터리 진단 장비를 갖춘 민간 검사소도 17% 수준에 불과하다. 배터리 손상의 경중을 판단하기 어려워 부분 수리보다 전면 교체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고, 이 역시 보험사의 리스크를 키운다.
보험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전기차 보험 제도의 안착을 위한 핵심 조건으로 ▲정확한 통계 축적 ▲배터리 손상 기준 마련 ▲제조사와 보험사 간 정보 공유 체계 구축 등을 제시했다. 결국 사고 이력과 배터리 상태를 기반으로 한 ‘정보 기반 보험’ 체계가 확립돼야 맞춤형 요율 적용과 안정적 상품 운용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2021년 보험약관 개정으로 전기차 배터리도 감가상각 적용 대상이 됐으며, 신품가액 보상특약이 도입됐다. 이를 통해 소비자는 일정 비용만 추가하면 신품 배터리로 교체가 가능하다.
하지만 여전히 폐배터리의 소유권 문제, BaaS에서의 보상 구조, 재사용 배터리 기준 등 해결되지 않은 쟁점들이 산재해 있다. 기존 보험약관 체계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보 중심 보험 체계로의 전환, 제도와 데이터 정비가 열쇠
보험업계는 전기차 배터리와 관련 연구나 상품 개발 등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구조라면서도 미래 대비를 위한 데이터 확보 등에 나서는 모양새다.
보험사 관계자는 “사실 자동차보험 손해율도 높은 상황에서 전기차 배터리 상품에 대한 연구나 개발을 하기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라며 “그러나 향후 전기차 전환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는 만큼 대형사 중심으로 데이터 확보를 통해 연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면서 보험업계 또한 그에 맞춘 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소비자 보험료 부담과 보험사의 리스크 관리 사이의 접점을 찾는 것이 복합적 과제가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보험업계는 새로운 시도에 나서고 있다. 일부 대형사는 전기차 특약 상품을 시범적으로 출시하고 있으며, 사고 이력과 운행 패턴을 반영한 요율 체계도 개발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차량에서 실시간으로 수집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험료가 조정되는 유동적 보험 체계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보 공유 인프라와 소비자 보호 체계가 함께 정비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업계 전문가는 “친환경 정책이 소비자에게 실질적 혜택으로 돌아가려면, 보험 체계도 그 변화에 발맞춰야 한다”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보험료 상승이 부담일 수 있다. 그러나 충분한 데이터 확보를 통해 리스크 기반 요율 체계가 마련된다면 전기차 배터리 관련해 위험은 줄이고 합리적인 보험료 산정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