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임준혁 기자]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 선사(해운) 및 선박(조선) 제재 움직임을 가속화하는 가운데 이번에는 미국 항만에 설치된 전체 컨테이너 크레인의 8할을 차지하는 중국산 크레인까지 타깃이 됐다.
업계 일각에서 미국의 견제 정책이 지속될 경우 조선산업과 마찬가지로 항만 크레인을 제작하는 국내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반면 현실을 고려했을 때 한국 기업의 신규 성장동력 확보 혹은 ‘어부지리’ 수주는 ‘김칫국 마시기’라는 반론도 공존한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조선업 재건과 중국 견제 방안’을 골자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행정명령 5조에는 중국의 해양·물류·조선 산업의 불공정 행위를 조사하고 조치를 취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중국산 부품을 활용하거나 중국이 소유한 '쇼어 크레인(Shore Crane)에 대한 관세'도 조사 대상에 포함되며 사실상 사용을 배제하겠다는 의도를 밝혔다. 쇼어 크레인은 배에 실린 컨테이너를 육상으로 옮기는 크레인을 말한다.
중국산 쇼어 크레인에 대한 미국 정부의 ‘철퇴’ 조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지난해에도 중국산 크레인이 이른바 '트로이 목마'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보고가 나왔으며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막는 행정명령을 시행한 바 있다.
작년 9월 美 하원 중국공산당 특별위원회와 국토안보위원회의 공동 조사 결과 중국 국영기업 ZPMC가 생산한 크레인이 미국 항만의 80%를 장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위가 ZPMC 크레인을 ‘트로이 목마’로 비유한 것은 장비들이 겉으로는 평범한 항만 하역 설비로 보이지만 실제 잠재적인 보안 위협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ZPMC 크레인에 설치된 셀룰러 모뎀을 통해 중국 정부가 미국 항만의 물동량, 선박 움직임, 화물 종류 등 민감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경제 정보 유출뿐만 아니라 군수 물자 이동에 대한 정보 노출로 미국의 안보와 직결된다는 것이 조사위의 논리였다.
바이든 전 대통령은 이러한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행정명령에 서명은 했지만 당시 미국 항만에 설치된 중국산 크레인의 교체 방안은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에 중국산 선박과 중국 선사에 대한 제재가 구체화되고 항만 크레인이 포함되면서 한층 강화된 제재 기조가 감지된다. 미국의 중국산 크레인 제재가 구체화되면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산업연구원 이은창 연구위원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조사 중인 쇼어 크레인은 컨테이너 항만 크레인인데 이미 ZPMC는 글로벌 항만 크레인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며 "미국 내 중국 크레인 제품 점유율은 전세계보다 높은 80%대를 차지하고 있어 사실상 앞으로 사용을 배제하겠다는 내용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에서도 HD현대삼호와 HJ중공업, 두산에너빌리티 같은 기업이 항만 크레인 제조를 재개한 만큼 한미 조선 협력이 속도를 내면 항만 크레인도 미국과의 협상 아이템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HD현대삼호는 지난해 7월 부산항만공사와 1796억원 규모의 '부산신항 서컨테이너터미널' 2-6단계 컨테이너 크레인 제작·설치 계약을 체결했다. 앞서 2020년 초 부산신항 7부두에서 수주한 컨테이너 크레인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기술력을 입증한 것이 재계약으로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HD현대삼호 관계자는 "현재 국내 및 싱가포르 등에서 크레인 사업을 수주해 진행하고 있다"며 "미국을 포함한 다양한 사업 기회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HD현대삼호는 올들어 2월까지 컨테이너 크레인이 소속된 산업설비 부문에서 1억4500만달러의 수주를 달성했다. 수주잔량은 7억9800만달러를 기록 중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항만 크레인 사업을 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 베트남 법인 두산비나는 베트남, 인도 등 동남아에서 항만 크레인을 수주하고 있다. 2023년 26기, 2024년 24기의 항만 크레인을 수주했다.
HJ중공업 건설부문도 지난해 7월 부산항만공사가 발주한 ‘부산신항 서컨테이너터미널 2-6단계 트랜스퍼크레인 제작설치공사’를 수주했다. 계약 규모는 트렌스퍼크레인 34기의 제작 및 설치이며 공사금액은 1870억원, 기간은 36개월이다.
본 2-6단계 사업은 작년 4월 국내에서 처음 완전 자동화된 부두로 개장한 부산신항 7부두(2-5단계)의 후속 사업이다. 앞서 HJ중공업은 2-5단계 사업에도 참여해 2023년까지 트랜스퍼크레인 34기를 모두 설치 완료한 바 있다.
트랜스퍼크레인은 컨테이너를 야드에 쌓거나 쌓인 컨테이너를 무인이송장비(AGV) 및 외부 트레일러에 실어주는 장비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산 항만 크레인은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각국에서 수주 실적을 쌓아왔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중국산에 밀리기 시작해 2006년 이후 국내 업체는 생산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HJ중공업 관계자는 "중국산 크레인이 워낙 낮은 가격으로 세계 시장으로 진출했기 때문에 우선 국내 진해신항 신형 크레인 입찰에 집중할 예정"이라면서도 "국내 발주 물량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역량을 키운 후 중장기적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처럼 미국의 중국산 항만 크레인 제재로 국내 크레인 제조사들이 반사이익을 볼 것이란 전망이 대체적으로 우세하지만 현실을 감안했을 때 반사이익은 시기상조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쇼어 크레인까지 제재 대상에 포함시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고 하지만 당장 시행되더라도 미국 항만에 설치된 모든 중국산 크레인을 철거하기는 불가능하다”며 “중국산 크레인을 다 뜯어낸다고 치더라도 이 기간 미국 항만에서의 컨테이너 하역은 전무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설령 국내 기업이 ‘어부지리’로 크레인을 미국으로부터 수주한다 손 쳐도 발주 후 제작 기간과 완료 후 미국까지 운송하는 시간, 비용 등을 합치면 현실성이 결여돼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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