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에 심한 의존도…한쪽 편들면 다른 쪽 보복 우려
시진핑 구애 자체가 위험…"레드카펫 깔면서도 균형잡기 진력"
(서울=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무역전쟁 격화로 미국과 중국의 진영구축 노력이 한층 더 거세짐에 따라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결전을 대비한 세몰이로 동남아 순방에 들어가자 당사국들에는 비상이 걸렸다.
15일(현지시간) 외신들을 종합하면 동남아 국가들의 우려는 G2 경제전쟁에 휘말려 의도하지 않는 타격을 받을 위험, 한쪽 편들을 들다가 다른 편을 자극할 위험에 집중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전날 주요 교역국이자 국경을 맞댄 베트남을 1박 2일 일정으로 국빈 방문했다. 이어 오는 15∼18일에는 말레이시아와 캄보디아도 잇따라 찾는다.
시 주석은 2023년 12월에 마지막으로 베트남을 찾았으며 캄보디아와 말레이시아 방문은 각각 9년과 12년 만이다.
이 같은 이례적 방문의 목적은 무역전쟁에서 트럼프 행정부에 맞설 협력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데 있다.
시 주석은 이번 방문을 통해 동남아 국가에 안정적인 파트너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세계 경제에 충격을 안긴 미국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관측된다.
싱가포르의 ISEAS-유소프 이샥 연구소의 티븐 올슨 객원 선임 연구원은 가디언 인터뷰에서 "중국은 규칙에 기반을 둔 무역 체제의 책임 있는 리더로 자국의 위치를 설정하면서 미국을 무역 관계를 망치려는 '불량 국가'로 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원티 성 비상임 연구원도 CNN에 시 주석의 이번 방문이 경제적으로는 전 세계에서 중국의 입지를 다변화할 방법을 찾는 것이고 외교 정책 측면에서는 트럼프의 오락가락하는 관세 정책으로 불안해하는 국가들을 중국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성 연구원은 "시진핑이 몸소 찾아가 보여주려는 것은 겁주기와 압박이 아니라 사랑"이라며 "그 과정에서 새 무역합의나 전략적 관계 갱신 같은 일부 '기념품'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 주석의 이 같은 행보는 미국, 중국 모두에 자국 무역관계가 크게 노출돼 있는 동남아 국가들에는 단순한 구애가 아니다.
섣불리 중국과 손을 잡았다가는 중국 견제를 위해 국가 전략을 총동원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분노를 살 가능성이 매우 크다.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의 주요 제조업 생산기지이자 교역 상대다.
동시에 이들 국가는 미국을 거대 수출 대상으로 삼으며 해외투자와 안보지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중국만큼이나 미국에 대한 노출이 적지 않기 때문에 반미연대에 가세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특히 시 주석의 순방 이후 미국과 상호관세 협상에 바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할 이유가 없다.
그 때문에 동남아 국가들은 정치·경제적 계산에 따라 미국과 중국 가운데 한쪽으로 쏠리지는 않고 '줄타기'를 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가디언은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으려 노력해 왔다며 이번 관세 전쟁에서도 두 국가 중 한쪽과 적대적인 관계를 맺는 상황은 피하려고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CNN도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이 이번에 시 주석에게 '레드카펫'을 깔아주며 환영하겠지만 향후 미국과의 협상에 대비해 시 주석 순방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시 주석의 첫 방문국인 베트남은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마찰을 빚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중국 부품과 원자재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은 베트남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자 3번째로 큰 외국인 투자 국가다.
베트남은 중국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지만 최근 미국의 요구에 따라 자국을 통한 중국산 상품의 대미 우회 수출을 단속하고, 민감 품목의 대중국 수출 통제도 강화할 준비를 갖추기도 했다.
말레이시아도 중국과 갈등 중인 남중국해 문제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수호하면서도 미중 갈등에 연루되는 상황은 막아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중국의 동맹국으로 최근 해군 기지 자금을 지원받은 캄보디아는 대미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유예 기간이 끝나면 미국과 관세 협상을 해야 한다.
동남아 전문가인 재커리 아부자 미국 국방대 교수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미국의 상호관세 유예를 각국에 대한 '사형 집행 유예'라며 "그 나라들은 여전히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 신세"라고 말했다.
s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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