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AI 반도체 시장이 급속도로 확대되는 가운데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모두 AI 생태계 확장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HBM을 바라보는 ‘위치’와 ‘역할’에 대한 전략적 해석은 다른 상황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SK하이닉스는 53%, 삼성전자는 42%, 마이크론은 5.1%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HBM3E(5세대 HBM)에 한정하면 SK하이닉스가 약 7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TSMC가 61%, 삼성전자가 14%를 점유했다고 예측했다.
먼저 삼성전자는 HBM을 시스템 반도체 전략의 일부로 접근하고 있다. 고성능 메모리부터 패키징, 로직 설계까지 포함하는 통합형 반도체 솔루션 전략의 연장선이다.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를 모두 아우르는 삼성전자의 사업 구조상 특정 제품에만 집중하기보다 생태계 전반의 균형 잡힌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다.
지난 3월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도 삼성전자는 HBM, 패키징, 시스템 반도체를 아우르는 AI 메모리에 대한 ‘포괄적 전략’을 강조했다. 전영현 DS부문장 부회장은 “AI 경쟁 시대에 HBM이 대표적인 부품인데 시장 트렌드를 조금 늦게 읽는 바람에 초기 시장을 놓쳤다”며 전략적 판단 미흡을 인정하면서도 “초격차를 재정립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삼성전자는 현재 HBM3, HBM4 등 차세대 제품을 준비하고, 고객 맞춤형 대응 역량 강화를 통한 경쟁력 회복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구체적인 전략을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기술 개발은 멈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HBM을 독립된 전략 축으로 규정하고 기업 차원의 집중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이 같은 전략은 기술 고도화와 제품 상용화에서 빠른 성과로 이어져 엔비디아에 세계 최초 12단 HBM3E를 독점 공급해 시장 내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1월 CES 2025에서 ‘Full Stack AI Memory Provider’ 전략을 발표해 HBM을 중심으로 한 메모리 기술의 수직 계열화 구상을 공개했다. D램, 낸드, 컨트롤러는 물론 AI 연산에 특화된 아키텍처까지 포함한 전략은 AI 반도체 생태계 내에서 SK하이닉스의 존재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AI 시장의 폭발적 성장에 따라 전략을 확대한다. 이뉴스투데이 전화 통화에서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자사의 HBM이 글로벌에서 각광 받기 시작한 건 지난 2022년도부터”라며 “HBM이 자리를 잡아서 AI 생태계 확장으로 전략을 바꾼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산업계 전반적으로 AI가 트렌드가 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확장된 전략을 목표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시스템 전체를 통합한 장기적 전략을, SK하이닉스는 단일 제품에 집중한 실행 중심 전략을 통해 시장에 접근하고 있다. 각각의 접근은 기업 구조와 기술적 강점을 반영한 선택이다. 단순히 점유율로 우열을 나누기보다 전략적 해석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두 기업 모두 공통으로 마주한 과제도 존재한다. HBM 기술은 미세 공정과 적층 기술이 복잡해 수율 확보와 발열 관리, 고객사별 맞춤화 대응이 지속적인 과제로 꼽힌다. 양사는 기술적 대응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반도체 패키징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실리콘 인터포저, 실리콘 관통 전극(TSV) 등 고급 패키징 기술 내재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수직적 통합 구조를 기반으로 칩 설계부터 제조, 패키징까지 통합 솔루션을 마련해 대응력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SK하이닉스는 HBM 수율 개선과 발열 제어를 위한 적층 기술 고도화에 집중하고, 고객사 니즈에 맞춘 사양별 생산 체계를 정교화하고 있다. 최근 TSMC와의 협력을 통해 차세대 패키징 기술 개발도 병행해 공급망 유연성을 확보하고 있다.
엔비디아 등 주요 AI 고객의 수요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생산 구조와 HBM4 등 차세대 기술력에 대한 선제적 투자 역시 양사 모두에게 중요한 전략 과제로 남아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HBM이 AI 시대의 핵심 메모리로 자리매김하면서 기업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경쟁력을 구축 중”이라며 “결국 중요한 건 고객이 원하는 기술을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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